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by 김나현

인생은 가끔, 아주 조용히 사람을 무너뜨린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스며들다가, 어느 순간 마음 깊은 곳을 눌러놓고는 흔적 없이 돌아선다. 무엇이 그토록 서러웠는지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감정의 잔상이 마음속에 눌어붙어 있다.살짝 건드리면, 물기처럼 번진다.


어릴 적 나는 억울함이 밀려올 때면 입술부터 달달 떨며 울음을 참곤 했다. 눈물이 많다는 이유로 여리다고 불렸고, 나는 점점, 감정을 보이지 않는 쪽을 택했다. 마음이 여리다는 건, 작은 말에도 쉽게 상처받고 오래도록 아파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 나는 감정을 줄이고 싶었다. 단단해지고 싶었고 강해지고 싶었다. 울음을 삼키는 법, 괜찮은 척 웃는 법, 생각을 먼 곳에 밀어두는 법. 그렇게 나는 한걸음씩 단단해졌다, 아니 단단해지는 척에 익숙해졌다.

작은 설움에도 마음이 무겁고, 형체도 없는 답답함이 가슴을 누를 때. 그건 아마도 내가 미뤄두었던 감정들이 돌처럼 마음속에 쌓여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들이 차곡차곡 눌려 어느 날 무게가 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왜 이렇게 버거운지, 무엇이 이렇게 힘든 건지 말을 하려니 어디서부터 이야기 해야 할지 막막하다, 분명히 나는 오랫동안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젠 가끔은 이유 없이 엉엉 울고 싶어진다. 그렇게라도 마음을 쏟아내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같은 것. 그런 날, 누군가가 다가와 조용히 내 옆에 앉아 이렇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 너 요즘 참 많이 힘들었지. 그 정도 견딘 것도 정말 대단한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다정하게 한 마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울어도 돼."


울어도 된다고 허락만 해주면 이 설움 참지 않고 쏟아낼텐데, 나는 그 한마디를 듣지 못해 오늘도 설움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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