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1도 관심없던 이의 내집마련 비망록
예전에 주짓수를 배울 때였다. 기초체력이 부족한 나는 당시 스파링을 하면서 사생결단으로 덤볐다. 즐기는 마음으로 하다가는 늘 엎어지고 팔이 꺾이고 목이 졸리기 일쑤였다. 얼마 되지 않는 체력으로 버티지만 결국에는 체격이 작아도 힘이 좋은 사람이 체격이 커도 힘이 없는 나를 이겼다. 그러다 체격이 나와 비슷한 40대 아저씨 한 사람과 스파링을 맞붙게 됐는데 이 아저씨는 공격과 수비를 하면서 표정이 속된말로 '실실 쪼개는' 표정으로 일관하던 분이었다. 그 표정이 뭔가 진지하지 않은 것에 더해 나를 너무 쉽게 보는 모습이어서 스파링을 할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 아저씨는 '조물주 위의 건물주'였다. 그 진지하지 않은 표정이 갑자기 수긍이 됐다. 직업이 '건물주'인 그 분은 건물 관리 이외에 남아도는 시간을 체력관리로 때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덩치는 큰데 체력은 후달리는 나같은 사람이 아득바득 버티고 공격하는 게 얼마나 귀여워 보였을까 싶었다.
주짓수 때 겪은 그 일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이전부터 부동산이 '실거주'라는 말로 표현되는 주거의 목적을 넘어 투자의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대해서 일종의 반항심리가 있었다. 결국 불로소득이 근로소득을 이기는 꼴이 아닌가. '발품파는 노동'을 이야기하긴 하지만, 그건 쇼핑을 위한 이동이지 노동은 아니다. 부동산이 물건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다음에야 부동산 소득은 결국 불로소득의 딱지를 버릴 수 없다.
1981년부터 1996년까지 태어난 이들을 묶어 '밀레니얼 세대'라고 칭하는 걸로 알고 있다. 어느 나라든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 중 하나가 '주택 마련이 어렵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은 상승 중인데다 지금의 젊은이들 월급으로는 제대로된 집을 마련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런 젊은이들 중 하나다. 대부분의 지방이 그러하듯 그다지 높지 않은 월급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노동자. 서울의 집값도 미쳐 날뛰고 있지만 6대 광역시의 집값 또한 그 동네의 월급 노동자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오르고 있기 때문에 '내집마련'의 꿈을 이루지 못하는 건 서울의 젊은이나 대구의 젊은이나 마찬가지다. 주변을 살펴보니 내 월급이 대구 안에서 그다지 적은 월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집마련을 꿈꿀 수 없다는 건 세상이 뭔가 잘못됐다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내가 집을 사서 돈을 번다는 건 세상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왜 갑자기 지금 집을 사겠다고 마음을 먹었느냐고 묻는다면 첫 번째는 '호텔'이 내게 줬던 경험 때문이었다.
난 여행다니는 걸 좋아한다. 공군 학사장교로 군 복무를 하던 때 처음 자동차를 산 뒤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데 재미가 붙었다. 그러다보니 1박 2일도 자주 하게 됐고, 자연스레 모텔과 호텔을 자주 이용했다. 호텔이든 모텔이든 방 열쇠를 받고 들어가면 일단 조용하다. 오롯이 '나 혼자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자주 1박으로 숙박업소를 이용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묘한 적막감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묘한 경험을 한 번 하게 됐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오니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TV를 보기 위해 소파에 누웠는데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이 공간에 감도는 공기가 날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부모님이 들어오면서 그 편안함이 깨졌다. 날 키워준 부모님이 들어왔는데 그 편안함이 다른 편안함으로 치환된 것이 아니라 '깨졌다'고 느낀 것이다. 독립을 하고 싶다고 느낀 첫 순간이었다.
부모님과의 관계 또한 '집을 사야겠다'고 느낀 또 다른 계기가 됐다. 어머니는 현재 갱년기를 심하게 지나가고 계신다. 매일 얼굴이 붉어지고 몸이 덥다고 호소하신다. 그러면서 늘어난 것이 '짜증'이었다. 아버지는 평생을 같이 산 사람이니까 어떻게든 견디고 받아주시는데 아들인 나는 그게 잘 안 됐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자꾸 마음에 실금이 가는 게 느껴졌다. 어머니가 인생의 황혼을 힘겹게 넘어가시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게 느껴졌다. 마음같아서는 오피스텔 월세를 몰래 얻어 야반도주라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천륜을 한 방에 작살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쩔 때는 이런 상처받은 내 마음이 어디서 어떻게 폭발할 지 몰라서 두렵기도 했다. 30대 후반까지 오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던 시기가 1년을 넘은 적이 없었지만 이제는 거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런 생각들이 섞이고 섞여 결심을 하게 된 건 내 재형저축 만기가 1년 남은 2019년 11월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