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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 - 우울증에 걸리게 된 이야기

by 수덕헌

나는 우울증과 수면장애를 앓아 4년째 병원에 다니고 있다. 우울증.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다. 거기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는 그것을 ‘늪’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수면장애.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 날 동이 틀 때까지 뒤척이다 겨우 두 시간 잠든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예민해지고, 눈알이 빠져나올 것만 같이 아프다.

그 늪에 빠진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나에 대해 반 아이들이 “재수 없다”, “아토피 괴물(나는 아토피성 피부염을 어릴 적부터 앓고 있었다)”이라며 뒷담화, 앞담화를 하고, 나를 ‘오염 물질’이라 부르며 피하고 망신을 주는 행위를 했다. 너무나도 괴로웠었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께 이를 말씀드렸지만,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며 참아보라는 말밖엔 듣지 못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대한 어려움과 두려움, 이에 대해 뭐라 반항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실망이 나를 늪으로 인도했다.

겨우 그때의 악몽을 벗어나고 다시 일어서는가 싶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다시 늪에 빠졌다. 여름 방학 바로 하루 전날, 중학교 동창에게서 “네 이야기 다 들었다. 다신 연락하지 마라”는 생뚱맞은 문자를 받았다. 사연을 알고 보니 나와 같은 반 여자아이가, 나에 대한 악의적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같은 반 아이에게 따지니, “걔(중학교 동창)가 그럴 줄은 몰랐다. 나도 들은 얘기 한 거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내가 있는 반의 여자아이들 대부분이 나를 피하거나 싫어하는 눈치였고, 심지어는 나를 담임 선생님께 일러바쳐 매장하려 했다.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아이들을 죽이든, 내가 죽든 둘 중 하나를 할 것이다. 그 아이들의 이름을 지금까지도 곱씹을 정도로 나에겐 트라우마인 사건이었다. 더욱 슬픈 건 내가 친구라고 믿었고, 좋아했던 아이들마저 나를 공공연히 뒷담화하며 괴롭혔을 때였다. 나는 반항하지 못했고,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못 들은 체 넘겨야만 했다.

나를 늪에 빠트린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 공부와 진로에 대한 의견 차이가 심해서, 부모님과 많이 싸웠고, 무단가출을 감행했다가 집에 밤늦게 꼬리 내리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고3 때는 매일 같이 난간에 올라섰다가 두려워서 내려오기를 반복했고, 재수를 위한 기숙학원에 다닐 때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이 심해서, 신경과민과 수면장애로 이어져 결국 부모님 몰래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게 되었다. 수능이 끝나고도 불안함과 잠 문제는 계속되었고, 특히 군복무 중에는 부적응 때문에 자살 기도를 하려 했던 적도 있었다. (다행히도 군대에 있는 동안에 내 곁엔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에게 의지가 되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과거의 안 좋은 경험에 몸서리치며 살고 있다. 이 늪에서 헤어 나오려면 얼마나 더 약을 먹고, 얼마나 더 병원을 다녀야 할까? 정작 나를 괴롭힌 아이들은 이제 내 곁에 없는데, 오히려 나보다 더 잘 산다는 거 같던데, 왜 나는 수그리면서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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