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한창 힘들 시기였다. 사춘기에다, 반 애들로부터 괴롭힘을 받고 있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했다. 아이들이 나를 뒷담화하고, 따돌리고, 내 실내화 주머니를 변기에 처박아 놓고, 내 우산을 훔쳐 놓고, 좋다고 낄낄댈 때면 속이 뒤집히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도 나는 입 벙긋 하지 못했다. 참다 참다 너무 괴로워서 부모님께 이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께서는 “네가 아이들에게 말해라. 나한테 이러지 말라고, 싫다고 말해라.”고 하셨고, 용기가 없는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가을 운동회 때 단체 율동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 듣는 노래가 마음에 무척 들었다.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노래를 검색해 보니, 곡명은 <<그대에게>>, 1988년에 나온 노래라고 했다. ‘그대에게’라… 오, 전주 부분 멜로디가 좋다! 왠지 피아노가 치고 싶어지는걸? 음, 어머니께 피아노 학원 끊어달라고 졸라야겠다! -그렇게 해서, 평소 가요 프로그램도 관심 없어 하고 다룰 줄 아는 악기라곤 실로폰, 소고, 리코더밖에 없던 내가,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피아노 학원 몇 달 다니고(바이엘은 다 떼고 소나티네였나 체르니를 배우다 관뒀다. 물론 지금은 가물가물하다) 드럼 스틱을 손에 쥐었다. <<그대에게>>라는 노래를 드럼으로 연주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Wonderwall>>이라는 노래를 알게 되어(사족이지만, 내게 ‘오아시스’란 ‘Wonderwall’이다) 통기타도 잡기 시작했다. 재미를 붙이니 진도를 쑥쑥 나갔고, 유튜브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새로운 가수와 새로운 노래들도 접하게 되었다. ‘메가데스’, ‘린킨 파크’,‘아워 레이디 피스’같은 해외 록밴드와 ‘넥스트’라는 한국 록밴드의 팬이 되어 공연을 보러 다니기도 하고, 음반 CD를 내 용돈을 모아 사서 방 한곳에 나열하게 되었다.
음악을 듣고 악기를 연주하는 시간만큼은 나를 내려놓는 시간이었다. 평소에는 늪에서 허우적댔다면, 이 시간만이라도 난 자연 속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도인이 된 것만 같았다. 평범하고 볼품없던 개똥이(아이들이 나를 돌려 까기 위해 만든 멸칭이었다)가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틀면 록스타가 되는 상상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어느 날,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가수가 갑자기 패혈증으로 쓰러지고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내 가족을 잃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내게 <<그대에게>>라는 노래를 선물해 준 가수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신곡을 내고 밴드로 곧 돌아온다고 했던 가수가, 그의 애완 병아리를 따라 너무 허무하게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 가수는 멈췄지만, 오히려 나는 그 가수의 음악 세계를 탐구하게 되었다. 분당에 있는 그의 작업실(이었던 전시관)도 다녀오고, 10주기 콘서트도 다녀왔다. 대학교 밴드부에도 운 좋게 들어가서 <<그대에게>>를 드럼으로 연주하는 소원도 이루었다.
아무래도, 내게 필요한 건 독한 수면제도, 신경안정제도 아닌 것 같다. 내게 필요한 건 바로 록인 것 같다!(‘All I Wanna Do Is R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