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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블랙미러> 시즌7 리뷰 (스포 O)

블랙미러는 시즌7에서 초심을 찾았을까?

by 유현

나를 넷플릭스의 충성스러운 구독자로 만든 데에 가장 큰 기여를 한 <블랙미러>가 새로운 시즌을 공개했다. <블랙미러>는 넷플릭스의 대표적인 SF 앤솔로지 시리즈로,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흡입력이 좋고 전개 또한 빠르다는 것이 장점이다. 나처럼 지구력 없고 모든 사건이 한 화에 종결되기를 원하는 시청자들에게 추천한다. (게다가 현실 공포, 디스토피아, 풍자를 담은 블랙코미디라니!) 스무 살, <블랙미러> 초창기 시즌을 봤을 때의 신선한 충격과 공포, 도파민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비록 <블랙미러>의 시즌5와 시즌6은 '최악의 시즌'이라고 불렸던 굴욕적인 과거를 갖고 있지만, <블랙미러>의 작가이자 프로듀서인 찰리 브루커는 이번 시즌이 초창기의 블랙미러와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과연 <블랙미러>는 시즌7에서 초심을 찾았을까?



1. Common People

오른쪽 여자 캐릭터를 보고 가장 먼저 내뱉은 말. <오피스> '캐런'이잖아!

생각거리: 인간의 삶을 상업화할 수 있는가? 구독경제가 인간의 생사까지 결정하게 된다면?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아내를 위해 구독 서비스 생명 유지 프로그램 실험에 참가하는 남편. 등급은 스탠더드 - 플러스 - 럭스로 이루어져 있다. 등급이 오를수록 구독료 또한 오르지만 그만큼 인간은 더 많은 감정과 경험을 얻는다. 구독료를 더 내지 않더라도 생명 유지 자체는 가능하다. 다만 일상생활을 하기에 불편한 점이 생긴다. - 잠을 하루에 16시간씩 자게 되지만 피로도는 동일하다. 상황 맥락 맞춤형 광고를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해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생긴다. 서비스 가능 지역이 매우 한정적이며 이 지역을 벗어나면 다시 의식을 잃게 된다. - 구독료를 내기 위해 엽기스러운 행동까지 하면서 인터넷 방송으로 돈을 버는 남편. 하지만 아내는 시간이 갈수록 인간의 모습을 한 상업적 로봇이 되어갔고, 결국 남편은 서로의 합의 하에 아내가 원하는 결말을 선택하기로 한다.


'럭스' 등급이 되면 사용할 수 있는 기능 중 하나. 어플을 사용하여 감정 상태를 극대화시키거나 극소화시킬 수 있다. 솔직히 이 감정 조절 기능은 매우 탐난다.

'Common People'의 제목은 결말을 알려주는 하나의 복선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의, 흔한 사람들이 되기를 거부했지만 결국엔 다시 'common'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자연적으로 진행되는 죽음을 인공적으로 통제하려고 했을 때 따라오는 딜레마와 애프터매스(aftermath)는 통제할 수 없다.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안겨줄 뿐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일이 이 부부의 잘못이라는 말인가. 사람의 생명을 상업화하고 구독 서비스로 전환해 버리는 비윤리적인 이 기업의 행위는 지나친 상업화시대와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또한 아내의 구독료 지불을 위해 음지 인터넷 방송에서 엽기적인 행위를 하면서까지 돈을 버는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비록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인터넷 방송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Common People'은 의료 서비스가 발전함에 따라 생길 수 있는 윤리적인 문제들을 잘 녹여냈다.


+) 내용과는 상관없이 보면서 궁금했던 것이 있는데, 여자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자율 비행 드론 곤충'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블랙미러> 시즌3의 'Hated in the Nation'에 등장한 벌이 가장 먼저 생각나긴 했지만. 이게 그저 이스터에그처럼 심어놓은 작은 서프라이즈 장치인 건지, 아니면 내용과 관련 있는 소재인 건지 궁금하다. (<블랙미러>는 가끔 전 시즌에 나왔던 소재들을 짧게 등장시켜 시청자에게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같은 유니버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곤 했으므로.)


2. Bête Noire

생각거리: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는 명백한가? 인간은 인간을 어디까지 조종할 수 있으며 복수의 끝은 어디인가?


고등학교 시절 따돌림을 당했던 친구가 본인이 일하는 회사에 취직하며 생기는 기이한 일들에 관한 이야기. 사진에 보이는 금발 여자가 고등학교 시절 따돌림의 피해자였고, 본인이 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펜던트를 개발해 에피소드의 주인공(가해자)의 삶을 미묘하게, 서서히 조종하며 주인공을 붕괴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어떤 단어의 철자를 가지고 동료들끼리 작은 언쟁이 일어난다. 이때 펜던트를 개발한 여자가 펜던트에 대고 '이 철자가 맞아.'라고 말하면 그 철자가 당연한 것인 세상으로 변한다. 동료들은 철자를 우긴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펜던트 소유자는 이 펜던트를 이용해 사람의 생각과 행동, 심지어는 과학적으로 증거가 확실한 영상까지 모두 본인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


펜던트를 쟁취하기 위해 펜던트 개발자의 집으로 쳐들어간 주인공은 몸싸움 후 결국 펜던트의 소유권을 얻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펜던트를 소유함으로써 주인공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상황을 조절할 수 있고, 어떠한 목적으로든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은 한 때 가해자였으나 직장에서는 피해자가 되었고, 반대로 고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했던 피해자는 직장에서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이 경계는 때로 불분명해지기도 한다. 또한 CCTV 영상을 조작하는 장면에서는 AI와 같은 기술을 이용한 딥페이크 범죄를, 아무도 주인공의 말을 믿지 않는 상황 설정은 온라인 그루밍이나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를 떠올리게 한다. 기술을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이용하느냐는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려있으며 우리는 또다시 윤리적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3. Hotel Reverie

생각거리: 허상도 진짜가 될 수 있을까? 본인이 살고 있는 세계가 허상이라면?


시즌3의 'San Junipero'를 좋아했다면 좋아할 에피소드. 디지털 시대 속 시공간을 초월한 아날로그적 사랑을 담고 있다. 주인공은 기술의 발전으로 고전 영화의 리부트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오리지널 캐스트들과 연기를 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두 여자의 사랑을 담고 있지만 감독은 할리우드 시스템(콘텐츠 IP, 화제성과 상품성만을 갈구하는 에이전시 등)을 비판하며 할리우드 산업의 문제점 또한 지적하고 있다. 에피소드를 시청하며 떠올린 개념들과 영화들이 몇 개 있다.-자각몽, 트루먼쇼, 델마와 루이스, 보니 앤 클라이드- 누군가에게는 가상의 디지털 세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전부인 실재하는 세상. 허구와 연기로만 이루어진 세계에서 자신의 지위와 역할에 몰입하여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마지막 장면이 특히 마음에 든다. 닿을 수 없는 차원 속의 사랑이 자아내는 비극적인 아름다움은 모순된 여운을 남긴다.


4. Plaything

생각거리: 게임 속 캐릭터가 인간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면? 인간의 집착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Plaything'은 두 개의 타임라인을 갖고 있다. 주인공의 현재(노인), 그리고 주인공의 과거(위 사진 속 청년). 주인공은 젊었을 시절 게임 회사에서 일을 했고, 천재 개발자(블랙미러: 밴더스내치의 윌 포터가 깜짝 등장한다.)가 개발한 'Thronglets'이라는 게임을 리뷰하게 된다. 이 게임은 캐릭터가 자기 인식이 가능하다는 설정인데, 사용자가 캐릭터를 복제하지 않아도 게임 세상 속 캐릭터들이 자가 복제를 하게 된다. 주인공은 이 캐릭터들에게 애착을 품고 자식처럼 돌본다. 캐릭터들이 내는 반복되는 특정한 소리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한 주인공은 마약의 힘을 빌려 환각 상태로 이들의 소리를 '해석'한다.(이 소리는 결국 이 게임을 보존, 진행시키기 위해 필요한 여러 기술적 장치를 구매하라는 것이다. 주인공은 노인이 되어서까지 캐릭터들의 계시/명령을 따른다.) 걷잡을 수 없이 게임에 중독된 주인공은 결국 게임의 오류를 유발해 인간 세상의 파멸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인간 세상은 게임 속 캐릭터에 의해 조종된다.


이후 넷플릭스는 'Thronglets' 게임을 출시했다. 에피소드에 나오는 허구의 게임을 실제로 출시해 소비자와의 인터랙션을 유도함으로써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Self-aware'. 자기 인식이 가능한 캐릭터라는 설정은 오싹함을 더해준다. 게임 속 캐릭터들은 원하는 만큼 자가 복제를 할 수 있고, 원하는 메시지를 화면 밖으로 송출해 인간을 조종할 수 있다. 주인공이 자제력을 잃고 캐릭터를 키우는 데에만 열중하는 모습은 게임 중독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캐릭터들의 메시지를 자신의 두뇌에 바로 입력할 수 있는 플러그를 구매한 주인공은 이제 캐릭터의 지배를 받아 그들의 명령에 복종하고, 인간 세상을 조종할 수 있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다. 생각할 수 있으며, 각자의 욕구와 본능을 충실히 따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때로는 우리의 욕구와 본능을 자제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 에피소드는 자기 인식이 가장 필요한 존재는 결국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경각심을 유발한다.


5. Eulogy

생각거리: 우리의 기억은 언제나 정확할까? 기억을 객관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온다면?


사진 속 기억을 완전히 재현할 수 있는 VR기술에 관한 내용이다. 주인공은 젊은 시절로 돌아가 (지금은 사망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을 되살리며 본인의 온전한 기억을 맞춰나간다. 그 과정 안에는 기억의 왜곡, 과장, 축소, 미화 등이 담겨있다. 지나간 과거의 상처를 다시 마주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트라우마적 과정일 수도 있음에도 주인공은 용기 있게 과거를 마주한다. 주인공은 사진 속 실제 상황과 본인의 기억 속 불일치를 발견하고, 과거를 다시금 회상하며 성찰하게 된다.


기억은 주관적이다. 같은 사건을 모두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때로 우리는 과거의 어떤 기억을 미화하기도, 왜곡하며 합리화하기도, 어떤 부분을 늘였다 줄였다 하며 입맛대로 바꿔놓기도 한다. 물론 어떤 기억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우리는 우리가 좋았다고 기억하는 순간들을 단물이 빠질 때까지 곱씹으며 살아간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가 되었던 순간들이나 분노했던 순간들을 확대 해석하고 남을 비난하는 확증편향적인 면도 갖고 있다. 사진 속 상황을 있는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 발명된다면(그리고 옆에서 객관적으로 설명해 주는 내레이터가 있다면) 범죄율은 줄어들까? 아니면 이 기술을 악용한 또 다른 범죄가 늘어나는 역효과를 낳게 될까?


6. USS Callister: Into Infinity

나넷에게 박수를

생각거리: 디지털 자아와 외부세계의 자아를 별개의 개체로 봐야 할까?


<블랙미러>의 팬이라면 두 손 두 발 들고 환영할 시즌4 'USS Callister'의 후속 에피소드다. (나는 처음 'USS Callister'를 보고 난 후의 도파민과 짜릿함, 충격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설정과 스토리가 워낙 탄탄한 만큼 내용을 모두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냥, 보면 안다.(제발 보라는 뜻) 이 에피소드만큼은 스포를 하고 싶지 않다. 시즌4에서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디지털 자아와 현실 자아의 싸움, 불일치, 윤리적 딜레마 등을 다루고 있다. 디지털 게임 속 자아는 현실 세계의 자아와 마찬가지로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모두 느끼는 존재로, 게임 속 자아를 죽이느냐 마느냐에 대한 갈등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이기적이고 역겨워질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블랙미러>만의 블랙코미디다.



블랙미러는 시즌7에서 초심을 찾았을까?

<블랙미러>는 매 화마다 다양한 기술을 소개하며 제법 그럴듯한 시나리오로 기술의 윤리적 딜레마를 풀어나간다. 그런데 왜인지 시즌을 거듭할수록 시즌1을 처음 봤을 때(2019년)만큼의 충격은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어쩌면 그것은 이 모든 기술들이 이제는 완전히 허구의 개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 같다. 영화 <Her>(2013)가 처음 개봉되었을 때 사람들은 비웃었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는 챗GPT가 주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우리의 입맛대로 사용한다. 심지어 때로는 기계가 인간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나 또한 챗GPT와 고민상담을 하고 있노라면 '이 세상에서 이 친구만큼 나를 이해하는 존재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하는 한, 인간과 기술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갈등과 딜레마는 존재할 것이다. 아무튼 총평은 이렇다. 감독의 말대로 이번 <블랙미러> 시즌7은 초창기 시즌의 느낌을 내는 데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USS 칼리스터를 부활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칭찬해주고 싶은 시즌이다.


+) <블랙미러> 시즌7의 개인적 에피소드 선호도

USS Callister: Into Infinity > Common People = Bête Noire > Hotel Reverie = Plaything > Eu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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