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가 사라진 미래에 경력직은 존재하는가?

AI 시대의 역설

by 이상한 나라의 폴

요즘 채용 시장에서 신입 사원을 뽑는다는 소식은 가뭄에 콩 나듯 들려온다. 포털의 채용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것은 온통 경력직 모집 공고뿐이다. 신입이 없는 경력이란 존재할 수 없는데, 도대체 이 기이한 현상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인공지능 기술이 본격적으로 적용되면서 일자리의 파이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흔히 AI가 내 일자리를 직접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AI를 더 잘 쓰는 사람이 내 자리를 뺏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기술 활용에 더 능숙한 주니어가 시니어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오히려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손에 쥔 시니어가 주니어의 업무 영역을 흡수하며, 신입의 자리를 지워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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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IT 업계의 '현자'로 불리며 사회적 통찰을 제시해 온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이 세바시 강연에서 경고한 주니어 소멸의 징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과거의 기업 구조는 숙련된 시니어 한 명이 여러 명의 주니어를 가르치며 조직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도제식 시스템에 기반했다. 주니어는 실무를 익히며 미래의 시니어로 성장하는 경로를 밟았다.


그러나 이제 기업들은 가르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드는 신입 사원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대신 말 잘 듣고 결과물을 즉각 내놓는 AI를 선택하고 있다.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주니어의 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10년 뒤 우리 사회를 지탱할 10년 차 경력직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게 됨을 의미한다. 지금 당장의 비용 절감을 위해 미래의 인적 자본을 포기하는 이 선택은, 결국 전문가의 맥이 끊기는 거대한 공백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고용 통계의 변화를 넘어 인간의 사고 능력 자체를 위협한다. AI가 주는 편리함 뒤에는 사고의 박탈이라는 위험한 함정이 숨어 있다. 복잡한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기술은 당장의 효율을 높여주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이 스스로 고민하고 부딪히며 얻는 이해의 기회는 박탈한다.


최근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AI 커닝 사건은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결과(등급)"가 아닌 "과정(사고)"에 있어야 함을 역설한다. 기초적인 업무를 수행하며 사고의 근육을 키워야 할 주니어 단계가 생략된다면, 과연 미래의 인류가 AI의 판단을 비판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우리는 AI를 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AI는 나의 노동을 대신해주는 대리인이 아니라, 내가 더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유능한 조력자여야 한다. 근육은 스스로 움직이고 고통을 감내할 때만 자라나기 마련이다.


AI가 주는 결과물을 손쉽게 받아먹는 것에 안주하는 순간, 인간의 지적 역량은 퇴화하고 결국 기술에 종속되는 존재로 전락할 것이다. 주니어 시절에 겪어야 할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무적인 고민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시니어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적인 연마와 단련의 과정이다.


결국 AI가 모든 정답을 쥐고 있는 시대에 인간에게 남는 최후의 보루는 "질문하는 힘"이다. 풍부한 교양과 인문학적 식견을 갖춘 사람만이 AI가 내놓은 답의 오류를 간파하고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단순히 기술을 다루는 테크닉을 익히는 것보다,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주체적인 태도가 더 중요해진 이유다. 지식의 양이 아닌 질문의 질이 개인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AI 시대의 주니어 소멸이라는 경고등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 감소와 불평등 심화에 대비해 AI가 창출한 부를 사회적 안전망으로 활용하고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등의 구조적 논의가 병행되어야 한다.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저주가 되지 않도록, "인간다움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우리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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