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괴담 2편과 이어집니다.)
앞서 밝히자면 나는 귀신을 믿지 않는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부장님의 말을 듣고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말았다. 태국 무당의 손녀인 게 뭐, 이렇게.
예상했던 대로 수아는 평범했다.
수아 엄마가 학부모 상담 때 '수아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무당인 자기 엄마에게 사주하여 너의 육신을 해하겠다'는 식의 말을 하긴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저주가 무서워 교육 활동을 제대로 못 한다면 교육대학교에서 지낸 4년이 아깝지 않겠는가.
그래도 조금 찝찝하여 수아에게 물어보긴 했다. 너희 할머니 용하시냐고. 수아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수아의 할머니가 적당히 용하시길 바라며 교육 활동을 이어갔다.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5월이 됐다.
그동안 수아 엄마는 두어 번 내게 살을 날릴 것을 예고했고, 나는 태국과 한국의 거리를 재어보며 그 살이 적중할 확률을 짐작했다. 그리 높아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뭔가를 날리긴 날렸는지 일이 터졌다.
운동회날 준비운동을 하던 수아가 갑자기 쓰러졌다.
그 자리에 있던 교감 선생님이 수아를 업고 보건실까지 달렸다. 보건 선생님은 구급차를 불렀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수아의 손가락에 뭔가를 끼워 수아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다행히 구급차가 오기 전에 수아는 정신을 차렸고, 상태도 그다지 심각해 보이진 않았다. 수아는 잠깐 입원했다가 바로 다음 날 등교했다.
그리고 또 쓰러졌다.
수아는 쓰러질 때마다 1분 정도 의식을 잃고 깨어났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 쓰러졌는데 그 빈도수가 점점 잦아져 한 달 후에는 하루에 서너 번으로 늘어났다. 등교하다가도 쓰러졌고, 교실에서도 쓰러졌고, 화장실에서도 쓰러졌다.
7월이 되자 수아는 등교를 하지 않고 병원에 입원했다.
수아의 입원은 방학식까지 이어졌다. 방학식 날, 나는 조퇴를 하고 수아가 입원했다는 병원으로 갔다.
수아는 스스로 걷지 못했다. 언제 또 쓰러질지 몰라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몸엔 힘이 없었고, 얼굴을 백지장처럼 하얬으며, 눈은 실핏줄이 다 터져 빨갰다. 의사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방학이 끝나고 더 이상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게 무의미해진 수아는 다시 등교를 했다. 다행히 더 이상 쓰러지지는 않았다.
대신 이상한 소리를 했다.
“선생님, 저 여자가 안 보여요?”
이렇게.
수아는 종종 아무도 없는 곳을 보며 멍하니 있었고, 이따금 정말 저 여자가 안 보이냐며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수아는 빠르게 활달한 모습을 잃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국으로 떠났다. 그 뒤는 나도 모른다.
이야기의 길이에 비해 다소 밋밋한 마무리라고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관찰할 수 있었던 수아의 모습은 거기까지였다.
나는 교육자로서 가르치기 위해 학교에 출근하고, 아이들은 배우기 위해 등교하지만 이따금 교육과 전혀 상관없는 일들이 학교에서 일어나곤 한다.
살을 날리겠다는 무당과 각목을 들고 학교를 찾아오겠다는 조폭, 아이가 다치면 절대 일반 병원에 보내지 말고 자기네 종교 건물로 보내달라는 사이비 신도까지.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맞나 싶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는 작은 사회라고 한다. 작은 사회를 옮겨 다니며 내가 느낀 건 우리 사회는 정말 다양하고, 그 다양한 사회들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학교는 유독 무당이 많고, 어느 학교는 유독 조폭이 많고, 어느 학교는 유독 사이비 신도가 많다. 아이들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결국 자신이 속한 사회 안에서, 아주 약간씩만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그렇고.
*본 글에 나오는 일화, 인물, 단체, 지역은 각색과 재구성을 거친 것으로 특정 일화나 특정인을 지칭하고 있지 않습니다.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도 모두 가명임을 밝힙니다. 가벼운 소설이라 생각하시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