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캔버스 툴을 사용해보다
우리 지역위원회에서는 운영위원회 워크숍을 떠나기 전에 당원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설문은 https://community-canvas.org 에서 제공하는 도구를 변형했습니다. 이 곳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개선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도구를 제공합니다. 하나의 캔버스에 커뮤니티가 직면하는 과제들,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크게 세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1번 <정체성>은 공동체 각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어떻게 공동체 자체의 목적과 연결되는 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2번 <경험>은 개인이 공동체에 들어 오거나 나갈 때, 그리고 그 안에서 겪는 다양한 상황들을 표현합니다. 3번 <구조>는 공동체의 지속을 위한 조건들과 공동체 안팎의 소통을 원할히 하기 위한 조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각 섹션의 하위 범주는 다음과 같이 나뉩니다.
복잡해 보이는 이 그림은 어떤 도움이 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설문을 실시하는 조사원 혼자만 이 그림을 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그림을 채워 넣기 위한 질문에 응답하는 구성원 모두가 결과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질문을 해석하는 것은 조사원의 몫이 아닙니다. 100명이 설문에 응답하면 100개의 그림이 나올 것입니다. 각각의 멤버가 경험하고 느끼는 공동체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각 항목이 어떻게 서로 이어지는 지, 즉 중심부의 목적과 정체성으로부터 바깥의 경험과 구조에 이르는 길을 구성원 모두가 확인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구성원의 그림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까지 내용을 확인했다면 이것은 통계상의 중간이나 평균을 찾는 일반적인 설문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셨을 겁니다. 공동체의 일반적인 경향을 찾는 것이었다면 응답 표본의 대표성과 응답자의 수가 중요할 겁니다. 조사도 특정 시기를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하고 끝내야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반면 이것은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라기보다는 각기 다른 부분적인 생각들을 모아서 펼쳐 놓는 방식입니다. 그런 다음 현재 우리 공동체가 가진 생각과 행동, 그리고 조직의 자원이 얼마나 잘 연결되는 지를 각자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자는 취지 입니다. 따라서 응답자의 수와 대표성, 그리고 조사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인원이라도 서로 토론을 할 수 있는 형식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조사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응답 내용을 서로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합니다.
몇가지 실수들
번역상의 난점. 우선 Rituals 와 Contents의 경우 각각 행사와 정책으로 옮겼습니다. 응답자가 최대한 이해하기 쉬운 언어들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비영리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Community라는 단어는 당, Member는 당원, Selection은 입당, Transition은 탈당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뒤의 두 단어는 사실 다른 커뮤니티에 적용시, 입학과 졸업 등 회원자격을 벗어나도 후원회원이나 졸업생 모임 등으로 연계를 가지고 활동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이 툴을 지역위원회 수준의 공동체에 적용하는데 있어 추가되는 난점은 바로 설문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지역위원회만을 떠올리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이는 번역과정에서 중앙과 지역을 모두 암시하는 내용이 담기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실에서 당원의 활동이 지역위원회에 강하게 결합되어 있지 않은 상황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는 중앙당에서 본 내용이나 희망 섞인 답을 쓰기 때문이죠. 이런 난점은 아마 오프라인 워크숍 과정에서 상당부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참석자의 멤버십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것을 확인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17개 섹션을 채울 질문은 하나 정도로만 제시했어야 하는데 툴을 제공한 단체의 설명서를 잘못 읽는 바람에 각 섹션 마다 연관된 질문 5-6개 모두를 사용했습니다. 당연히 응답자의 피로도가 상당해서 중간에 응답을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온라인 설문 방식의 한계입니다. 응답자들은 응답하는 그 순간에만 반응하고 말아버린다면 아무리 조사자가 정리를 잘 해 피드백을 준다고 해도 서로 간의 생각을 직접 비교하는 의의가 퇴색되어 버립니다. 조사자가 전문성을 발휘해 정리를 잘하면 잘할 수록 간극은 더 커질 것입니다. 서너명의 소그룹을 지어 이 툴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끝으로 제가 이 커뮤니티 캔버스 툴을 사용해 당원들과 워크숍을 진행하고자 했던 의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당은 유급활동가 숫자로는 대기업 만큼은 아니겠지만 그 조직이 매우 복잡한 곳입니다. 중앙당과 시도당, 지역위원회의 민주적(혹은 위계적)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는데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에 공직자가 있는 경우 행태의 복잡성은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조직 바깥의 시민들이나 심지어 당 안의 멤버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비공식적 행위가 더 큰 곳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모든 조직과 마찬가지로 정당은 권위주의적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경향을 그대로 놓아둔다면 적극적 활동을 하는 유급 당직자 중심의 정당이 되거나, 선동가적 리더가 일반 멤버를 이끄는 정당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한편으로 당은 강령과 당헌, 그리고 당규를 통해 당원들의 권리와 의사결정과정, 그리고 조직의 비전과 목표를 명시해놓고 있습니다. 소위 정답은 그런 성문화된 것을 외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제도는 성문화된 것을 따르는 것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하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이 툴은 과연 멤버 각자가 그런 가치들을 얼마나 내면화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문화와 경험을 함께 다루고 있기 때문에 목표와 비전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자신의 체험 속에서 반추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설문 결과를 정리한 내용을 같이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오히려 속한 단체에서 이것을 사용해보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