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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변머리 Oct 19. 2015

위로공단

   위로공간은 여느 사회 문제를 다룬 다큐와는 다르게 미술작가인 감독의 실험적 화면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관객이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화면으로 채운 것은 아니더라. 그렇게 많은 인터뷰로 이루어진 영화인데도 설명하지 않는다. 60, 70년대 여공의 삶과 2000년대 서비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삶, 반주변부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와 주변부의 노동자들이 감각적으로 이어진다.   


눈을 가린 소녀와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바닥을 기는 개미떼와 새벽녘과 황혼녘에 날아오르는 새 떼들, 좁은 골목과 산길을 오르는 소녀 등의 이미지들이 없었다면 그저 시간 순서로 나열된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의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쉽게 연결되지 못했을 것 같다. 한시간 반이라는 시간은 40년의 시간과 아시아라는 지역의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설명하거나 고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여성노동자 운동의 굵직한 사건들을 주요 인터뷰를 통해 나열하지만 자극적인 대사로 현실을 고발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들의 일과 노동의 가치에 대한 복합적인 태도를 담담히 그릴 뿐이다. 정부와 회사의 악랄함덕에(당시 사건의 배경을 안다면 더욱) 고발하는 영화처럼 느껴질 수는 있어도 기본적으로 감독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여성 노동자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의 감성을 그리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특히 승무원과 콜센터 노동자들의 이야기에서 요양보호사 이야기로 넘어가는 마지막 장면에 할머니와 중년의 여성이 등장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할머니가 중년 여성을 업고. 다리를 건너며. 이제껏 등장한 많은 인터뷰이들의 목소리가 겹쳐지는데, 나는 거기서 화면상 이미 지나가 버린 그 황혼녘(새벽녘)의 새 떼가 보이는 것 같더라. 


오늘은 특히 같이 본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고마웠다. 한 친구는 영화 속의 주요 인터뷰이가 누군지 몰랐지만 누구보다 많은 생각을 했나보다. 영화관에서 술집으로 가는 길에 한동안 영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직장 또한 영화 속 사례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그 친구가 어떻게 봤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했다.




사실 오늘 극장에 우리 일행 세명 말고는 아무도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이 없었다. 대개 이 영화를 찾아 봄직한 사람들과 같이 갔다면 오히려 뻔한 말로 영화 뒤풀이를 했을 것이다. 누구는 너무 역사와 사회를 집약하는 그 사건들을 너무 잘알아서, 또 누구는 영화 속 현실에 심정적으로 동조하지만 자신은 안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 그렇지 않을까. 나도 그런 편이라는 걸 그 친구 덕분에 깨달았다. 


영화관 밖을 나서며 한 친구는 영화 '카트'를 보고 난 관객들과 극장 청소노동자의 조우를 언급하며 이야기 거리를 던져 주었지만 밤이 늦어서 그만 쓰기로....


어쨌든 위로공단 많이 보시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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