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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문득 세상이 달라졌다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by 글앤리치

여러분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여기 본인의 삶이 '문득'으로 이어져서 살아지는 것 같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최근에 만난 분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머리가 허리까지 닿을 정도로 길었다고 합니다.


네, 그분은 아주 건장한 남자입니다.


1월에 단정하게 잘랐다고 하면서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저 사실은 머리가 되게 길었어요.


사진 보여드릴까요? 허리까지 오죠?


1월에 만났으면 사진 속의 저를 보실 수 있었을 텐데, 하하하.


왜 그랬냐면은요,


한창 바쁘게 일할 때였는데 평소에도 허리 쪽이 안 좋긴 했거든요?


근데 어느 날 자다가 진짜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화장실을 가려다가 그대로 침대 옆에 넘어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늘만 보고 있었어요.


큰일이다 싶어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 119에 직접 전화를 했어요.


구급차를 타고 여러 병원을 헤매다 겨우 응급실을 들어갔는데 디스크가 터져서 다리로 가는 신경이 눌리게 돼서 그렇다더라고요.


그리고 큰 수술을 했습니다.


의사는 어쩌면 다리가 마비되어 평생 못 걸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1년쯤 병원에서 휠체어 생활을 했어요.


병원에서 심심한데 입은 안 아프니까 옆방 할아버지 환자하고 간호사들하고 친해져서 재밌게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운이 좋았는지 걷기 시작했고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근데 그날 문득 생각이 났어요.


병원에서 마주 보이던 건너편이 소아암 병동이었는데 아기들 약이 독해서 진짜 사람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만 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차피 집에서 쉬는데 머리카락이라도 기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기르기 시작했는데 큰 남자가 머리가 길어서 다니니까 사람들이 경계하더라고요.


아닐 수도 있지만 제 느낌이 그랬어요.


근데 사람들이 근처에 잘 안 오니까 은근 편한 것도 있더라고요.


뒤돌면 남자라서 깜짝 놀라는 반응도 재밌고 그랬어요.


암튼, 딱 3년 길러서 올해 1월에 기부했어요.


그때 만났으면 저랑 이런 이야기도 안 하셨을 거예요.


- 머리가 허리까지 길었던 큰 남자 -


'문득' 사고가 생겼다가


'문득' 회복했고


'문득' 소아암 병동을 기억해 내서


'문득' 머리를 길렀고


'문득' 머리카락 기부한 스토리를


'문득'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듣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는데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인연'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저런 우여곡절을 겪고 마침내 때가 되어서 지금 저와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고,


기부한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을 쓸 아기도 인연이고,


누구든 이렇게 인연이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 아무 곳에다 작은 바늘 하나를 세우고


하늘에서 아주 작은 밀씨 하나를 뿌렸을 때 그게 그 바늘에 꽃일 확률...


그 계산도 안되는 확률로 만나는 게 인연이다.


-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연이지만 어느 하나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옆에 있는 소중한 인연들을 아껴주세요.


떠나갈 인연이면 억지로 애쓰지 마세요.


그리고 아직 제대로 된 인연이 없다고 아쉬워하지도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문득' 만나야 할 인연은 언젠가는 만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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