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아빠가 아플 때

by 솔솔솔파파

코가 찡찡하고 몸이 살짝 찌뿌둥하다. 몇 번의 재채기와 살짝 떨리는 몸.


'왔구나!'


전날 음악회 연주가 끝나고 긴장감이 풀리자 몸은 기다렸다는 듯이 신호를 보낸다.


감기 걸리기 전 나의 몸에서 보내는 신호다. 이 신호가 나타나면 2~3일 몸 관리를 잘해줘야 한다. 잘 쉬고, 잘 먹고, 잘 자면서 몸을 돌봐줘야 한다. 올 병이면 결국 오겠지만 최대한 짧게 보내주기 위해서 하는 몸 관리다.


몸은 쉬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지만 내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간다. '오늘 저녁은 뭐 먹지?', '장을 봐야 하나?', '외식할까?', '내일은 주말인데 아이들과 뭐 하지?' 그러면서 잠깐 컨디션이 안 좋다가 큰 통증 없이 지나가길 기도한다. 통증이 무서워가 아니라 내가 아파서 못 할 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주부의 일은 가족의 일상을 돌보는 일이라 못하게 되었을 때 불편과 작은 혼란이 생긴다.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어머니가 며칠을 편찮으셨다. 끙끙 앓으시면서 아침에도 일어나시지 못하고 누워 계셨다. 아버지는 짜증을 내셨다.


"아이들 학교 가는데 아침밥도 안 차려줘?"

"괜찮아요. 저 원래 아침 잘 안 먹어요."


어머니는 아픈 몸을 일으키셨다. 얼굴은 부어있었고, 눈은 통증 때문인지 찡그리고 계셨다. 비스듬하게 누워 계신 상태에서 일어나실 때는 이를 악 무셨다. 어지러우셨는지 벽을 붙들고 잠시 서 계셨다. 어렵게 말을 하셨다.


"뭐라도 챙겨줄 테니 먹고 가."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났다. 아픈 어머니를 끝내 일으켜 세운 아버지가 너무 야속해서였고, 참고 일어 나는 어머니의 모습이 답답해 보여서였다. 아침 며칠 못 먹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두 분은 저렇게까지 하실까?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재빨리 집 밖으로 나갔다.


주부가 아프면 가족들은 불편해진다. 평소에 주부가 하는 일을 본인이 직접 해야 하니 괜히 짜증도 난다. 하루 이틀이야 주부를 걱정하며 대신하지만 좀 길어지면 다들 한 마디씩 한다.


"병원은 가 봤어? 무슨 병이 그렇게 오래가?"

"엄마, 아직도 아파? 내일 소풍 가서 도시락 싸 줘야 하는데..."


이쯤 되면 주부를 걱정하는 것인지 자신의 불편이 길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나도 주부가 아닐 때는 주부였던 어머니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건강을 진짜 걱정해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던 것 같다.


월요일 아침. 아파도 아이들 학교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주어야 하고, 시켜 먹든 요리를 하든 끼니를 챙겨야 한다. 먹은 것을 치워야 하고 다음 날 입을 옷을 세탁해야 한다. 다행히 직장에 다니는 가모장의 도움을 받아서 몸을 최소한으로 움직일 수 있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다.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면 픽업을 나가야 하고, 아픈 몸으로 모든 일을 다 하려는 아내를 보면 미안해진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눈치가 보인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할 때, 그런데 내가 움직일 수 없을 때, 미안함과 죄책감과 두려움이 밀려온다.


몸이 아프셔도 이를 악물고 살림을 다 해내셨던 어머니가 얼마나 대단하셨던 것인지 이제야 몸소 느낀다.


"그냥 살아야 하니까 버텼지."


'어머니는 그 어려운 시절을 어떻게 버티셨어요?'라는 나의 질문에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맞다. 삶은 버텨내는 것이다. 고통, 통증, 외로움, 우울함, 죄책감, 두려움을 끝까지 버티는 것이다. 이를 악물고 그 힘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가을바람의 시원함이 느껴지는 날도 온다.


"아빠, 아무것도 하지 말고 필요한 것 있으면 저 시키세요."


내가 아프면 아이들도 비상에 걸린다. 딸은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하면 벌떡 일어나 일어나지 말고 시키라고 난리가 난다. 아들은 청소, 집정리 등을 시키면 불평한 마디 없이 기꺼이 한다. 기특하면서도 미안하다. 부모가 아프면 아이는 금방 어른처럼 행동한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는데 금방 어른이 된다.

직장에 다니는 아내는 주말에는 본인 시간도 갖고, 쉬고 싶을 텐데 주말과 연휴에도 쉬지 않고 집안일과 아이 돌봄을 대신해 준다. 본인도 감기기운이 있어서 힘든데도 나보다 덜 아프다는 이유로 대신 주부의 역할을 해 준다.


통증에 신음하여 잠도 못 자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가족들이 보여준 작은 돌봄들이 있었다. 아픈 시간 속에서 찾은 또 다른 선물 같았다.


힘들 때 버틸 수 있게 나타나는 마법 같은 선물이다.




모든 주부님들이 아프지 않으시길

아프셔도 금방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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