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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규 Jan 09. 2024

삶이라는 건 종종 위로가 필요한 날이 있는 법

공손한 위로


삶이라는 게 종종 위로가 필요한 날이 있는 법이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잔뜩 깨진 날, 혹은 날씨가 우중충해서 덩달아 우울해지는 날,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상처를 받은 날이면 누군가의 품에 안겨 이유 없이 울고 싶기도 한 것이다. 오늘은 참 어려운 날이었다고, 오늘은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고, 그렇게 누군가에게 위로해달라고 말하고 싶은 날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디 가서 하소연하는 성격이 못 되는 편이다. 어떤 일들이 나의 오늘을 힘들게 했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 괜히 내 허물을 스스로 들추는 것 같다. 아무리 종잇장도 맞들면 낫다곤 하지만, 굳이 내 종이를 누군가에게 같이 들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그게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나의 우울은 온전히 나의 몫, 내가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믿고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그 날은 유난히 업무가 많았던 날이었다. 거래처에 끊이지 않는 전화로 점심을 걸렀고, 애꿎은 정수기에 ‘왜 이렇게 얼음이 느리게 나오는 거야!’, 따위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화풀이해보다가, 다시금 밝은 목소리로 회의를 반복했다. 보고서를 쓰고, 제안서를 확인하며 회사의 손익을 따져보고, 협의내용을 정리하고, 퇴근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진규님, 오늘 일이 많아요?’ 같은 질문에 ‘아닙니다’라고 답하고, 다시 일하고, 문득 고개를 드니,


 혼자였다.

 어디선가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고,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손을 비볐다.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출퇴근해본 사람은 안다. 특히나 전철로 출퇴근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왜 항상 그토록 멀까.

 누군가는 앉아서 쪽잠을 청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휴대폰 게임에 심취해 고개까지 끄덕여가며 지루한 귀갓길을 때우고 있었지만, 어쩐지 나는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전철 안으로 몇 차례 밀려오고 밀려 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이를테면 홀로 떠 있는 섬처럼 고독했다. 옆에 서서 음악을 들으며 리듬을 타고 있는 사람을 붙잡고, ‘오늘 정말 힘들지 않았어요?’ 따위의 안부를 묻고 싶었고, 맞아요, 저도 그래요, 회사가 참 힘들죠, 그렇죠,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그런 일은 없었다. 전철은 수많은 사람을 함께 각자의 집으로 실어나르고 있었지만, 그 중 ‘함께’ 가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 나만 모르게 길 중간 어디쯤, 아주 감쪽같이 똑같은 모습의 길을 끼워놓은 것처럼, 걸어가는 길은 오늘따라 멀고 멀었다. 길 곳곳에는 어제의 눈이 녹지도 않은 채 구석진 곳마다 웅크리고 있었다. 여민 옷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고, 앙상한 나무들이 줄지어 길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무들은 가지 끝으로 반짝이는 별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희미하게 지워진 횡단보도를 건너 가지런한 보도블럭길을 지나고, 거기 따스한 불빛을 품고 있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평소 같으면 지나쳤을 포장마차인데, 잠시 머뭇거리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닫혀 있는 천막을 걷고 들어가니, 뿌연 김이 얼굴을 가득 덮었다. 천막 안쪽에 맺혀 있던 작은 물방울들이 서로를 안고 보도블럭 바닥으로 떨어졌다. 따스한 온기가 몸을 감쌌다. 나도 무언가 털어낼 것이 있다는 것처럼, 조금 몸을 부르르 떨었다.


 6구짜리 오뎅통 안에서 새빨간 게가 큼직한 섬과 같은 무 덩어리를 타고 가만히 국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아주 편안한 표정처럼 느껴졌다. 큰 멸치들이 망에 담겨 뒤척이고 있었다. 푹 익은 고추들 사이에는 화살처럼 오뎅꼬치가 잔뜩 꽂혀 있었다. 나는 마지막 활시위를 당기는 비장한 궁수라도 된 것처럼 하나를 뽑아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따뜻했다, 그리고 명중이었다. 뭉텅뭉텅 조각난 오뎅들이 뱃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몸엔 차가운 기운이 사라지며 온기가 돌았다. 주인아주머니가 국자를 들어 종이컵에 국물을 담아 나에게 건냈다.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드는 온기가 역시나 따뜻했다.

 오뎅을 먹을 땐 먼저 먹겠다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먼저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 먹고 싶은 대로 먹은 다음, 다 먹고 남은 꼬치를 세며 얼마나 먹었는지만 계산하면 된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 말 없이 오뎅을 먹기 시작했다. 작은 간장종지에 담긴 붓을 들어, 오뎅을 색칠했다. 후후 불어가며 포장마차 안을 밝히는 전구를 바라보았다. 필라멘트는 밝게 빛나고 있었다. 가만히 따뜻한 오뎅과 오뎅국물을 마시고 있으니, 내 뱃속에도 내가 모르던 전구 하나가 따뜻하게 켜지는 기분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끓는 떡볶이를 뒤적이고 있었고, 나는 포장마차 내부 끄트머리에 서서 가끔 발을 구르며 오뎅을 먹고 있었는데, 문득


 오늘 참 힘들었어요.


 실소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다행히 누구도 듣진 못했다. 여전히 붉은 게는 가만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떡볶이는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런 얘길 함부로 하는 사람이 아닌데. 주인아주머니가 한 번 눈길을 주더니, 다시 뜨거운 오뎅국물을 종이컵에 담아주었다. 나는 다시 공손하게 국물을 들고 후후 불며 마셨다. 뱃속이 환해졌다. 그것은 나에게,

 아주 공손한 위로였다.

  

 몇 개의 오뎅을 더 먹고 계산을 했다. 조심히 가요, 말하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나도 모르게 오뎅 몇 개를 포장해달라고 주문했다. 따뜻한 오뎅국물과 오뎅이 검은 봉지에 담겼다. 나는 그것을 공손히 받아들고 집으로 걸었다. 간식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는 맛있게 드시겠지. 뭐 이런 걸 다 사왔어, 하며 반가운 마음에 봉지를 받아들겠지. 가만히 오뎅을 그릇에 담아오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는 또 실소처럼, 그게 오늘 나에게 큰 위로였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던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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