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읕 Aug 23. 2021

시작

아이디어가 필요한 당신에게 전하는 어느 카피라이터의 편지


살면서 무엇을 모았나요?


저는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한다고 주변에 떠벌리고 다니지만 사실 모으는 걸 꽤나 좋아하는 편이에요.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흠모하고 스님의 관조적 태도를 배우고자 다짐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제 책장에는 무소유가 세 권이나 꽂혀 있는 뭐 그런 식이죠. ‘무소유’조차 세 권이나 소유하고 있는 지독한 수집벽, 이게 바로 저의 정체성입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 수집벽이 책에만 국한된다는 거에요.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제가 꽂힌 게 신발이나 시계, 카메라렌즈 등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몇 날이고 스스로 어깨를 두드려 준 적도 있지요. 가냘픈 통장과의 불가피한 갈등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하는 평화주의적 태도에 기반한 수집벽, 이게 바로 저의 더욱 정확한 정체성입니다.


본격적으로 책을 모으고 문장을 수집한 건 카피라이터 초년생부터였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카피 쓰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다 못해 지금 당장은 큰 도움이 안 되더라도 문장이 쌓이고 쌓여 어떤 임계치를 돌파하면 물이 표면장력을 이겨내고 컵 밖으로 쏟아 내리듯이 아이디어가 머리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시작한 일이었지요.


그렇게 모으고 팔고를 반복해 지금 책장에 쌓여 있는 책은 대략 500여권, 문장은 워드파일로 500페이지 정도가 되었어요. 요즘 카피와 아이디어가 필요한 순간에는 그간 추려놓은 문장을 꺼내어 되짚어 봅니다. 여기서 아이디어의 단초를 발견할 때가 7할 이상은 되지요. 뭣 모르던 초년생 시절의 바람이 어느 정도는 이뤄진 모양새라 저도 모르게 가끔씩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배어 물기도 합니다. 이 문장들은 마치 종갓집의 씨간장처럼 저의 보물이자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었어요.


장편소설 <달을 먹다>로 등단을 한 김진규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지요. “남편이 언젠가 그런 말을 했어요. 제가 매일 책만 붙들고 사니까, 쏟아내지 않고 그렇게 계속 구겨넣기만 하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김진규 작가의 인터뷰를 떠올리며 이렇게 쌓아놓은 자료를 저만 들고 있을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도록 세상에 끄집어 내면 어떨까 문득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저에게 영감을 준 문장들을 추렸습니다. 한 권의 책, 한 줄의 문장이 나에게 어떻게 영감을 주었고 나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글을 모아보려고요.


사상사 연구자 김영민 교수는 책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눈 앞의 효용에 연연하지 않은 공부”를 이야기 했지요. 저의 이야기도 효용과는 거리가 멀어요. 저는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기술’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시각’을 주로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아이디어를 단기속성으로 뽑아내는 일타강사의 그것과는 다를 예정이니 혹시 그걸 원하시는 분들께는 미리 양해의 말씀을 구합니다. 그럼에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글을 쓰는 저도,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한걸음 더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이 글이 좁게는 학생, 카피라이터 지망생, 광고회사를 다니거나 마케팅 업무를 보는 사람들에게, 넓게는 무료한 일상에 새로운 자극이나 영감이 필요한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이건 순전히 저를 위한 작업이기도 한데 지금까지는 눈대중으로 손맛으로 아이디어를 버무려왔다면 정형화된 레시피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배고플 땐 자기 노래를 아침 사과처럼 하나씩 꺼내먹으라던 자이언티의 노래처럼 아이디어가 고플 땐 이 글을 꺼내 하나씩 곱씹어 주시길 기대합니다. 이 글을 읽고 당신의 일상이 발상으로 가득 차길, 그래서 더 풍요로운 매일이 되길 기대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골목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