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낮에는 서점과 헌책방을 돌고, 해 질 무렵부터 재즈 바에 가 와인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어떤 날은 시든 꽃을 잔뜩 사들고 오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곯아버린 과일을 사 오기도 했다. 서점에서 본 활자들과 재즈 바의 노래는 내 머릿속에 남아 있을 뿐 실체가 없으니 주말의 기억을 사물로 무엇이든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술에 취해 생을 마감해가는 무언가를 집에 들이는 행위는 아침에 깨어난 내게 골치거리였다.
어느 일요일, 타자기에 떨어진 날벌레 시체를 보고 서점과 재즈 바를 뒤로한 채 집을 치우기로 했다. 버릴 것을 모두 버리고 남은 것을 정리하다가 먼지가 얕게 쌓인 비타민 케이스를 발견했다. 속에는 편지들이 빼곡하게 들어있었고 읽기도 전에 모두 네가 쓴 거란 걸 기억해 냈다.
우린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럼에도 너는 내게 자주 편지를 남기곤 했는데 할 말이 많았는지 편지지를 꽉 채우고도 모자라 뒷장에서 편지를 마무리했다.
읽기 시작하면 하루를 다 쓸 것 같아 케이스의 먼지만 털어내고 책장 한구석에 넣어두었다. 생각이 많아지려 해서 얼른 집을 치우기 시작했고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이사 왔을 때와 비슷한 모양새가 되었다.
편지를 보고 터져버린 기억 창고만 정리하면 완벽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일찍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누워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 보니 모두 네가 남긴 흔적이었다. 서점에 가는 것과 오래된 책을 보는 것. '다 니가 좋아했던 거잖아.'라고 혼잣말을 했다. 내 말이 끝나자 집은 다시 정적만이 남았다. 원하지 않았지만 눈물은 흘러내렸고 닦아낼수록 더 많이 흘렀다.
네가 했던 말과 행동은 모두 사라졌지만 내게 쓴 편지들은 남아서 너를 마음 가득 기억할 수 있게 해주었다. 꽉 채워 쓴 너의 생각들이 모여 소파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모두 쏟아냈는지 눈물이 멈췄을 때 나는 주말의 기억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석하게도 책장 앞을 다시 가야 해서 진정이 조금 더뎠지만 일기장으로 쓸만한 수첩을 찾았다. 앞으로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무언가를 집에 들이는 대신 일기를 쓰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를 기록하면 더 이상 아침에 깨어난 내가 곤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취하지도 않기로 했다.
다음날이면 나는 여느 평일과 마찬가지로 남이 손으로 쓴 생각을 보기 편하게 기록해 주기 위해 타자기 앞에 오랫동안 앉아 있을 것이다. 눈이 붓지 않기를 바라며 이만 잠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