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 도시 박물관>, 궁전 속 산업도시의 역사극장
브런치에서 꾸준히 글을 쓰고 쓰다 보니, 어느덧 폴란드 교환학생 2집의 마지막 글을 쓰게 되었다. 지금까지 쓴 글들을 기준으로 적은 우치의 기행글은 전체의 40% 정도. 행적으로 따지면 교환학생 5주 차까지의 기록이다. 우치의 나머지 절반 내용은 3권부터 바로 시작할 예정이니, 그 뒷내용이 궁금하신 독자 분들이 계신다면 이전과 같이 투리 본인의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면 된다! 사실 본인도 더욱 좋은 글로 여러분을 맞이했으면 좋겠지만, 슬프게도 본인 능력의 한계상 이 이상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경이다. 이 미천한 퀄리티나마 끝까지 유지하면서 교환학생 기행글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도록 투리도 끝까지 달리도록 하겠다...!
어쩌다가 이 글로 2권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었으니, 이번 글에서는 지금까지 소개한 도시 '우치'의 역사를 간략히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바로 직전 글에서는 '우치 도시 박물관'의 지상을 탐방하며 그 집의 주인과 얽힌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분량상 지하의 사진은 보여주지 못했는데, 그 남은 사진들을 이번 글에서 다 꺼낼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투리에게 우치란 어떤 도시냐. 스타크래프트식 비유로 말하자면 '상대 팀으로부터 뺏은 멀티' 느낌이다.
게임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조금만 더 보충하면, 스타크래프트는 상대방 적진을 모두 파괴하는 쪽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적절한 유닛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상대방을 공격해야 한다. 이때 더욱 많은 광물을 확보하는 사람이 유닛의 양과 질에서 우위를 점한다. 그렇기 때문에 게이머는 왕왕 본진 이외의 다른 장소로 뻗어나가 건물을 세워 광물을 캐는데, 그 새로운 진영을 '멀티'라고 부른다.
폴란드의 상당수 지역들이 그렇지만, 우치 역시 여러 나라들에 의해 번갈아 지배를 받았다. 이때 지배한 나라들은 모두 우치의 공장들을 통해 섬유와 면직물로 많은 이익을 얻었다. 그 모습이 투리 눈에는 흡사 광물이 많은 멀티를 뺏어가는 모습과 같았다. 그래서 우치를 '섬유가 많은 멀티'와도 같다고 말했던 것이다. 당시 우치만큼 산업화가 잘 된 도시가 또 잘 없었으니까 말이다.
좋아. 그러면 지금부터 이 박물관의 지하 부분을 같이 살펴보도록 하자! 이 지하에는 궁전이었을 시절 과거 창고와 관리용 공간 용도로 쓰였는데, 박물관으로 바뀌고 나서 우치의 과거와 관련된 소장품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곳에서는 특히 지난 200년 동안 우치가 발달한 과정과 그와 얽힌 다민족성이 담긴 이야기들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분량상 모든 내용을 다 설명할 수는 없는 관계로 일부 핵심 부분만 요약해서 글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시작이 원래 그런 법이지만, 우치 역시 처음부터 산업을 키우기 쉬운 곳은 아니었다. 무엇이든지 길을 개척하면 먼저 뚫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해당 지역에도 미래 잠재력을 보고 본인의 자원을 건 자본가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한편 당시의 폴란드는 11월 봉기나 여러 경제적인 난관에 의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결국 폴란드의 혁명은 실패로 끝나고, 우치는 러시아 제국령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만다. 이때 몇몇 대자본가들과 사업가들은 우치에서 큰 사업의 성공을 이루는데, 우치 최초의 대형 섬유 공장을 세운 루트비히 그로만(Ludwik Geyer)이나 대규모 산업단지를 만든 카롤 쉐블러(Karl Scheibler)가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물론 이 박물관 건물의 원주인인 포즈난스키도 재미를 본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결국 아까 언급한 부자들은 그들이 사업을 통해 쌓아 놓은 부와 자본을 통해 가족 전체가 향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를테면 본인 자식들의 유학이나 여행, 자선활동 등에 말이다. 물론 그렇게 공장 주인들이 이득을 보는 동안 일반 노동자들은 낮은 봉급으로 일을 하게 되어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등 빈부 격차는 벌어지게 되었다.
이때 우치를 먹은 러시아 역시 자동반사적으로 이익을 얻는다. 포즈난스키와 같은 거대 기업가들이 키운 섬유 공장을 통해 러시아의 세수는 증가했고, 면직물을 통해 얻은 자본 기반으로 군대의 보급품이나 물자를 키울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멀티에서 진짜로 유닛을 뽑거나 기술 업그레이드를 한 셈이다. 다만 당시 돈을 벌어들이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기업가들이라 러시아가 얻은 혜택이 일부 제한적이긴 했지만 말이다.
한편 기업들은 성장하면서 점점 더 사람과 매출을 늘렸고, 이에 따라 회사는 다방면으로 커져 한 사람이 운영할 수 없는 규모에 이르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 바로 '주식회사'의 형태인데, 우치에서는 20세기 초 전환기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회사들은 회사 내 지분의 효율적인 경영과 이익 분배를 가능하게 했고, 우치 기업들의 주주들 사이의 연결망은 영향력이 강한 네트워크를 형성시켰다.
그러는 동안 우치는 폴란드인, 유대인, 독일인, 러시아인 등 여러 사람들이 분포하는 다민족 도시로 발전했다. 비율이 어느 정도로 분포했냐 하면 폴란드인이 약 50%, 유대인이 30% 정도였던 것 같다. 그들은 각각 다양한 계층으로 도시 경제와 사회를 구성했다.
우치가 그렇게 흥미로운 인구 분포를 보일 때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우치의 주인은 다시 폴란드가 된다. 러시아와 독일, 오스트리아 제국이 실패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 우치는 산업 전시회 등을 통해 경제효과를 다시 톡톡히 노린다. 폴란드에서 가장 크게 열린 전시회는 1929년 포즈난에서 열린 전시회였는데, 우치는 이 전시회에서 자기 PR을 확실히 해 우치의 몇몇 공장들이 수상을 하는 등 큰 이익을 얻는다. 이후 우치도 뒤이어 1936년 공예전시회 및 박람회를 여는데, 해당 박람회는 경제대공황 이후 열린 가장 주요한 행사였다고 한다. 폴란드도 다시 자기가 되찾은 멀티에서 뭔가를 뽑아먹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가 우치는 중간에 독일에 의해 점령당하게 되지만, 나치 독일이 패망한 이후 폴란드는 다시 우치를 되찾으면서 인민공화국을 새로 세운다. 이 새로운 당국은 아예 우치 등의 지역들을 통해 얻는 경제적 부분을 국유화하고 그것을 정치에 종속시키려 한다. 당 활동가들은 모든 생산 영역을 결정했으며, 국영 기업들은 대부분의 시민들을 고용했다. 노동자들과 도시 간 경쟁은 각각 불타올랐으며, 당국이 부과한 계획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통행인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그들 중 일부는 당시 폴란드에서 가장 높은 민간 훈장인 '폴란드 인민의 건설자 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포즈난스키의 개인 궁궐이 우치의 대표 박물관으로 바뀐 맥락도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박물관은 포즈난스키의 개인 의지가 아니라 국유화 과정에서 박물관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 익숙한 투리의 입장으로서는 그 시절을 살았더라면 뭔가 불편한 게 많았을 것 하다. 자본주의에서 누릴 수 있는 상당수가 국유화된다니, 부자들 입장에서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그런 흐름을 투리만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니었는지, 우치의 주민들도 공산주의 당국의 선전에 맞서 파업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당국이 만든 '통행인 상' 따위의 훈장은 점점 파괴되는 시장 경제의 모습을 가리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은 변화를 촉구했다. 이 지점에서 소위 '연대노조(Solidarity)'라는 노동조합의 활약이 빛을 발하는데, 이 연대를 중심으로 한 많은 사람들의 요구에 결국 폴란드는 시장경제를 가진 민주주의 체제로 대체되었다. 참고로 이 '연대노조'라는 조합은 폴란드의 현대사에 상당히 중요한 조직이다. 앞으로 투리의 글에서 볼 일이 많은 조합이니 독자 여러분도 미리 알아두시길 바란다.
어쨌든 위의 이야기가 '우치'라는 멀티를 둘러싸고 '섬유 산업'이라는 자원을 이용해 이득을 보려 했던 주체들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내면 뭔가 아쉽지 않겠는가! 그래서 독자 여러분이 조금 심심할까 봐 그 당시 우치에서 사용되거나 만들어진 전시품들을 조금 더 보여주고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아래의 사진들을 보면 우치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이해하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래의 물건은 우치에서 쓰이던 라디오! 처음 폴란드 라디오가 만들어진 1925년 이후, 많은 사람들은 이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이론적으로는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 당시의 라디오는 엄청 비쌌을 테니 일반 서민들이 저런 걸 사는 건 택도 없는 소리였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라디오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뉴스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이게 새로운 얘기가 아닌 게, 우리도 옛날 역사 만화책 보면 일제 강점기 편에서 사람들이 라디오 앞에 모여 있는 장면이 수시로 나오지 않는가? 그거랑 같은 얘기인 거다.
위 사진의 물건은 냉전 시절 폴란드에서 사용하던 다리미!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때 당시 폴란드 인민정부는 여러 공장들을 국유화하기로 했었는데, 발전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가스와 전기를 광범위하게 쓰고 있었는데, 국유화된 회사들이 제대로 관리를 못하니 기업 이미지가 나락을 갔다고 한다. 저 다리미도 잘 보면 에너지원이 가스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아래 오른쪽 사진을 통해 사용 방법을 대충 유추할 수 있다. 저기 폴란드어로도 "가스로 다리세요!"라고 적혀 있지 않은가?
위의 도구 및 식기들은 세계 2차 대전 이전 우치에서 사용되던 물건들. 슬프게도 이때의 우치는 오랫동안 물 공급과 하수도 정비가 정비되어 있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유럽 도시들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우치에서는 여러 전염병이 기승을 부렸고, 제대로 된 방역은 1939년이 되어서야 제대로 실행될 수 있었다.
위의 물건은 Singer사에서 만든 휴대용 재봉틀! 위 회사는 본사가 미국 뉴욕에 있는데, 주로 재봉틀 제조 및 판매로 유명한 브랜드라고 한다. 동구권 유럽에서는 위와 같은 재봉틀이 품질 좋은 미국 제품으로 인식되어 선호되었다는데, 섬유 산업이 중요한 우치 입장에서 이런 재봉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위의 사진은 폴란드와 관련된 라벨들을 모두 모아놓은 코너로 보인다! 당시 "Made in Poland" 라벨이 붙은 제품은 그 품질이 매우 높다고 인식되었다고 한다. 특히 우치는 중요한 섬유 중심지였기에, 해당 공장에서 나온 제품들은 세계 여러 곳의 고객들에게 판매되었다. 개별 공장들은 산업 연합이라는 주체에 종속되었고, 이 연합은 여러 외국 무역 회사를 통해 제품을 수출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위와 같이 여러 다양한 물건들과 사진들이 해당 박물관의 지하 전시관에 남겨져 있었다. 그 물건들이 어찌나 많던지 투리도 사진 속에 모두 담아내지 못할 정도였는데, 궁금하신 독자 분들이 계신다면 직접 확인하시길 추천한다! 우치를 관광지로 선택하기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유럽에서 그나마 가장 많은 잠재력을 품고 있는 폴란드. 도시 '우치'는 역사적으로 그 폴란드에 많은 경제적 발전을 남긴 최고의 산업도시였고, 현재는 '영화'라는 산업을 도입해 새로운 이미지로 탈바꿈하려는 대도시다.
여행지로서는 아직 비주류 국가인 폴란드 중에서도 또 비주류 관광도시인 곳이 우치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폴란드가 크게 주목을 받는다면 대도시인 우치 역시 덩달아 관심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나라에 영향을 워낙 많이 끼친 것도 있고, 도시 나름의 매력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도시의 산업적인(?) 역사에 대해 오늘 투리는 여러분과 함께 나누어 보았다! 과거 러시아와 폴란드가 '우치'라는 멀티를 통해 이득을 얻었던 것처럼, 투리도 이 교환학생 글이 미래에 큰 자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치기로 하겠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