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대해-3

by 네버마인드

세 번째, 종자의 배유 부분이 흙을 뚫을 힘을 만들 수 있도록 영양성분을 저장하고 이 모든 것들이 전류하고 재합성하며 새로운 생장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다.

얇은 종이에 적힌 인턴 계약서는 Global.COM 도메인의 INTERN CONTRACT로 탈바꿈했다.

“전엔 무슨 일 했어요?” 란 질문에 전보다는 배에 힘을 주고 대답할 수 있었다.

이젠 3개월의 짧고 단순한 업무를 헛헛한 속에 욱여넣은 게 아니었다. 나름 굵직하고 어려웠던 보고서들, 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태도들, 잘게 씹어 나름대로 자신만의 양분을 만들고 있다고 자신했다.

이젠 조금씩 종피를 뚫고 두 발을 뻗을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아니 그보다도 누군가는 자신의 다리가 단단한 흙을 뚫고 설 수 있겠다고 예상했다.


슬프게도 이것은 자만으로 밝혀졌다. 해외 대학 출신들 사이에서 누군가의 학교는 여대라는 이유만으로 드센 여자들의 집합소 아니냐며 비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자신들이 겪은 이상한 여대생 이야기를 쏟아냈고 누군가는 그냥 어색하게 웃으며 “제가 사과라도 해야 할 분위기네요” 하고 작게 반항할 뿐이었다. 같은 외국계지만 두 번째 챕터와는 달랐다. 모든 것이 자유였고 즉 모든 것이 책임이었다.

근무시간은 자유였지만 업무의 “빠른” 완수는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한 필수 덕목이었다.


높은 콧대만큼 기준이 높았던 팀장을 만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누군가는 업무의 연장선으로 자신의 출신과 자신의 성격마저도 부족한 사람이란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정규직 티오가 있을 수도 있다는 팀장의 희망 고문으로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점차 짜게 식어가는 팀장의 보고 리뷰를 보며 그 자리는 점차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인턴 마지막 날, 모든 팀원이 워크숍을 떠나고 누군가는 홀로 퇴사 절차를 밟았다.

지난 사옥의 5배는 되는 사옥 공간마다 눈에 담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작은 복사기 하나하나 새겨진 회사 로고를 보며 어쩌면 다신 이곳에 올 일이 없겠구나 직감했다.


그렇게 팀장은 이렇게 되어 아쉽다는 전화 한 통으로 이 기간을 마무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속한 팀은 정규직 티오가 전혀 없던 상태였다.

“좋은 기회” 와 “정규직 전환” 이란 이름 아래 나를 갈았던 업무들은 (물론 좋은 기회였을 수도 있지만) 정확히는 팀장 KPI 채우기에 지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이 쪽팔려서 2일을 울었다.

실패가 아니라 그 작은 자리 하나 얻겠다며 스스로 갈아 넣은 시간이 자신을 더 작게 만들었다.


정작 저녁을 사주겠다며 연락한 것은 친하지 않던 아니 어쩌면 누군가가 너무나 무서워하던 선배였다.

그 선배는 이 팀의 숨겨진 수장이자 모든 팀의 규칙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큰 눈과 딱딱하게 끊기는 말투 때문인지 그녀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선배는 자신이 지켜보던 누군가에 대한 리뷰를 진정성 있게 전달했다. 자신만의 인사이트가 있을 텐데 다소 기가 죽은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그리고 취업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 등..

각자 집을 가는 길에 선배는 누군가의 등을 다독이며 잘 지내라고 독려해 주었다. 누군가는 까맣던 골목을 보면 자신이 겪었던 다른 두 선배를 떠올렸다. 그리고 떠나는 그 선배의 조언을 한 글자라도 놓칠까 집에 와서 얼른 노트에 기억나는 대로 받아적었다.


한참이 흘러 친했던 팀원에게 듣기론, 그 선배는 팀장과 갈등으로 인해 자진 퇴사를 했다고 했다.

“난 상명하복 질서 다 별로야 그냥 편하게 대해줘” 비음이 잔뜩 섞인 말투로 인사하던 팀장은

사실 위,아래 방향으로만 살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모두의 라이벌이자 이 팀의 KPI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그 선배는 그 과정에서

어떤 팀원에게도 기대지 못했을 것을, 왜 팀원들이 여대를 욕할 땐 그 선배가 없는 자리에서만 했는지

모든 것이 어렴풋이 이해가 됐다.

‘사람이 지긋지긋하다, 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생도 비겁하고 지겹다’ 누군가는 생각했다.


자신들은 교묘하다고 생각하는 그 경계선이 사실은 얼마나 속물적이고 불툭 튀어나온 것일지 모르겠지.

누군가는 그 경계선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비릿하고 슬펐던 경험을 누군가는 성장을 위해 씹어 삼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