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해 튀소

by 가을산

미용실에 갔더니 여자 미용사가 어깨를 좍 펴고 턱을 들어 올리며 자신을 ‘헤어 디자~이너’라고 했다. ‘미용사’를 사전에서 찾아본다.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남의 머리나 얼굴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여기에 더하거나 뺄 것이 있는가? 없다. 꼭 맞는 설명이다. ‘헤어 디자~이너’라고 영어로 불러줘야 격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가? 천만에. 올려야 할 건 턱도 아니고 실력이다.


우리 말이 시시각각 외국어, 주로 영어로 대체되고 있다. 한쪽엔 병원, 다른 쪽엔 ‘클리닉’. 팥빙수를 파는 소박한 가게보다 외국어 간판을 단 아이스크림 집이 더 많다. 의류나 소품 판매업체에서는 색깔을 전부 영어로 말한다. 핑크, 그레이, 네이비, 블랙. 언제부터 우리는 빨강을 레드라고, 초록을 그린이라고 하게 됐나? ‘그린 테라피’라니!

‘키’가 된 열쇠는 사라져가는데 ‘키링’은 쏟아져 나오고 ‘굿즈’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쓰는지. ‘굿즈’ 동생도 태어났다. ‘뮷즈’. 박물관에서 파는 굿즈, 란다.


‘브런치’도 대단한 문화라도 되는 양 왜 그대로 갖다 쓰는지. 우리에겐 예전부터 ‘아점’이 있었는데. ‘브런치 스토리’는 뭐며, ‘라이킷’이 다 뭔가? 적당한 우리말 이름을 찾지 못했겠지만 찾을 생각이나 했을까? 외국어로 지어야 그럴듯할 거라 여겼겠지. ‘하트’를 보면 좋다는 뜻인 줄을 다 알 텐데 굳이 그걸 ‘라이킷’이라고 불러야 하나? ‘구독자’와 ‘관심 독자’라 부르던 명칭은 왜 슬그머니 ‘팔로워’와 ‘팔로잉’으로 바꾸었을까?


우리말을 밀어내는 외국어 기세가 무섭다. ‘팔 굽혀 펴기’보다 ‘푸쉬 업’, ‘취소되었다’ 대신 ‘캔슬되었다’를 더 많이 쓴다. 탑승 수속을 못하고 다들 ‘체크인’을 해야 한다. 창구에서는 ‘보딩 패스’라며 탑승권을 내준다. 핫플, 웨이팅, 플레이팅, 파티쉐, ... 이 모든 말이 우리말로 할 수 없는 말인가? 우리 말로 해도 될 걸 영어로 하려고 영어를 배우나?


멀쩡한 우리말을 죄다 영어로 갈아치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픽업’ 대신 ‘아이를 데리러 간다’고 하면 도회적 감성이 결여된 사람 같은가? ‘지연되었다’고 말하면 ‘딜레이’라는 영어도 모르는 사람으로 볼까 두려운가? 영어를 잘못 쓴 게 드러났을 때는 얼굴이 벌게지지만 우리말 어법은 틀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영어를 쓰면 더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참 없어 보인다. 있는 건 겉멋과 영어에 대한 열등감, 우리 말에 대한 자긍심 결여다.


‘거긴 부킹이 힘들어’, ‘그 사람 마인드가 괜찮아’처럼 말마다 영어를 섞어 쓴다고 우리 언어가 더 풍부해진 것도 아니다. 영어를 쓰지 않아도 될 때 영어를 쓰고 다양하게 표현해야 할 때는 ‘너무’라는 단어 하나로 끝내버리는걸.


대전에 사는 딸의 친구가 튀김 소보로로 유명한 빵집(‘베이커리’라고 해야 만족할 테지만)에서 빵을 사 왔다. 빵집 종이봉투에 써놓은 말에 으악, 소리가 나왔다. ‘땡큐해, 튀소!’ 이게 한국어인가?

그곳에서 튀김 소보로가 나온 지 45주년이 되었다고 자축하는 건 상관 없지만 그런 괴상한 말을 인쇄해서 사방에 배포해야겠는가? 그렇게 쓸 때 전혀 걸리는 게 없었다면 그 사람은 외국인이거나 우리말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눈곱만치도 없는 사람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한글 문서에서는 ‘땡큐해’ 밑에 빨간 줄이 그어져 있고 ‘고맙다 해’로 고치라 한다. 중국 사람이 하는 말 같다. ‘튀소’에 고마워한다는 뜻으로 썼을 텐데 ‘튀소’에 명령하는 말이 되었다. ‘땡큐해’가 ‘감사해’ 같은 명령형 문장이라서다.


영어를 우리나라의 공용어로 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꽤 있고 은근히 바라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영어 공용화로 가는 과정일까?

영어가 공용어가 되면 영어로 인한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영어 광풍이 그쳐 세상이 고요해질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집에서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가르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되랴? 영어 사교육이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제는 진짜 영어 못하면 죽을 것 같은 위기감에 온 식구가 같이 영어를 배우느라 집안의 기둥뿌리 두어 개 정도는 거뜬히 뽑힐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영어를 잘 가르쳐 보겠다고 외국인 보모 모시기 경쟁이 치열해질지도 모른다. 이왕이면 서양인이 좋겠으나 그들의 몸값은 아주 비쌀 테니 할 수 없이 영어를 좀 하는 동남아인이라도 고용하려고 할 것이다. 나라에서 그런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일이며 그들에게 아이 맡기기가 간단할 성싶은가? 지금도 영어 스트레스로 유치원생이 원형 탈모증에 걸리는 지경인데 어린아이가 정서도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지내며 아무런 문제가 없겠는가?

막대한 영어 교육비를 지출할 수 있는 집과 그렇지 못한 집 사이의 격차는 더 심해질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유익한 일이겠는가?


예상되는 온갖 부작용을 무릅쓴 채 영어 공용화가 이루어지기만 하면 우리 국민의 영어 실력은 기대한 만큼 쑥 올라가게 될까? 약간은 몰라도 쑥, 은 아니라고 본다. 이백 년쯤 미국의 식민지로 살지 않으면 그리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 길이 가고 싶은가?


프랑스 작가인 알퐁스 도데는 한 나라의 언어는 감옥의 열쇠와 같다고 했는데 지금 우리는 열쇠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혹 바닥에서 걸리적거리면 발로 차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러다 남의 나라 언어의 감옥에 갇혀 영영 벗어나지 못하게 되지는 않을지. 감옥 문을 열어젖히고 나가 독립 선언서를 높이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3.1 독립 선언문이 울려 퍼졌던 탑골 공원에는 아직도 겨울이 다 물러나지 않았겠지. 언제나 꽃 활짝 피고 새가 즐겁게 노래하려나.

‘세종 대왕 전하, 망극하옵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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