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질

by 가을산

내 주위에는 선생님이 많다. 남매 중에 셋, 새언니 한 분도 선생님이다. 나도 몇 해 그렇게 불렸고 친구 중에도 여럿이다. 각급 학교가 많으니 누구 주위에든 선생님은 많을 텐데 왜 내 옆에 유난히 많다고 여겼는지 모르나 어쨌든 선생님은 늘 조심하고 공대해야 할 사람으로 생각해왔다.


그래서 얼마 전 친구가 자신의 친구를 ‘선생 하는 애’라고 하자 적잖이 놀랐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선생님을 ‘님’자를 떼고 ‘선생’이라 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교양 없는 사람이라 치부하곤 했는데 내 친구가 그렇게 말하다니! 오랜 친구가 교양 없는 사람으로 밝혀지기라도 한 듯 몹시 실망스러웠다. 감히 선생님을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까닭은 ‘군사부일체’(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한 가지로 존경해야 한다)니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는 말도 배웠지만 가까운 사람으로 선생님이 많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가만 보니 선생님을 ‘선생’이라 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생각해 보니 학교 다닐 때 아이들도 전령처럼 ‘수학 샘 온다’라고 외치곤 했다. ‘샘’과 ‘선생’은 느낌이 좀 다르긴 하지만. ‘선생질한다.’라는 말도 잘 썼다. 우리 아버지도 그런 사람이었음을 아프게 고발한다.


내가 노처녀로 살다 처녀 귀신이라도 될까 두려웠던 아버지가 교사인 작은 며느리에게 어디 선생질하는 좋은 사람 없느냐고 물었단다. 그 자리에 나는 없었다. 큰 새언니가 전해준 바에 따르면 작은 새언니는 그 물음에 ‘선생 ‘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단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커 ‘선생질’이라는 말이 아주 모욕적이었나 보다. 그때 큰 새언니는 작은 새언니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단다. 시집온 지 오래되지도 않은 며느리가 시아버지께 그리 말하다니 나중에 결혼해서 시어머니께도 찍소리 못했던 나를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긴 하다.


나는 그 이야기에 여러모로 속이 상했다. 내 나이, 스물 예닐곱쯤이었다. 요즘은 그 나이에 결혼한다고 하면 왜 그렇게 빨리하느냐고 하겠지만 그때는 스물다섯만 넘겨도 부모들이 더 초조해했으니 아버지의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나이 차도 별로 나지 않고 내 나이 전에 결혼에 골인한 올케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열패자가 된 것 같아서였다. 딸을 결혼시키는 걸 치운다고도 했던 시절이다. 거름 무더기라도 되는지.

결혼 전선에서 낙오된 딸을 위해 며느리에게 부탁하는 아버지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선생’인 며느리 앞에서 ‘선생질하는 사람’을 찾은 아버지가 참으로 딱했다. 올케가 얼마나 아버지를 무식하고 교양 없는 사람으로 여겼을까 싶었다. 평소 아버지를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자부하기에 정말 속상하고 화가 났다.


옆에 있던 큰오빠가 ‘대통령도 대통령질이라고 하는 데 뭘.’ 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대통령이라는 가장 높은 직위에서 하는 일도 ‘질’이라고 한다면 어떤 직업엔들 ‘질’을 못 붙이랴. 전직 대통령이 이러다가 대통령질 못해 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고 했던 게 생각나 찾아보니 대통령질이 아닌 대통령직이라고 했단다. ‘질’보다는 나은가? 이 말에는 ‘직’보다 ‘질’이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


‘질’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명사 뒤에 붙는 접미사로 걸레질, 삽질처럼 도구를 가지고 용도에 맞는 일을 하는 행위라고 제일 먼저 나와 있다. 그다음에 선생질, 훈장질, 목수질처럼 직업이나 하는 일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또 옳지 않은 일을 뜻하는 말이라며 계집질, 서방질, 도둑질을 예로 들었다. ‘선생질’은 역시 고급 어휘는 아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선생님을 존경한다. 문을 숭상하는 전통에 선생님을 ‘사농공상’의 으뜸인 선비처럼 생각해서일지 모른다. 그런데 어째서 선생질한다, 는 말도 쉽게 할까?

우리는 선생님을 높게 보는 만큼 기대치도 높아서 선생님에게 고매한 인격과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선생님이 어떤 비행을 저지르면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보다 더 준엄하게 비판한다. 선생질하는 사람이 저러다니, 저래서야 학생이 뭘 보고 배우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교사였던 언니에게 시집살이를 심하게 시킨 언니의 시어머니는 언니가 뭐라 하면 네가 선생질한다고 시에미를 가르칠 작정이냐고 했고 어떨 때는 그러고도 네가 선생이라고 학교 가서 선생질하느냐고 했다 한다.

그런 말에 많이 상처받은 언니는 아버지가 선생질이라는 말을 썼을 때 ‘아버지는, 자식들이 학교에서 가르치고 대학에서도 가르치고 며느리도 교산데 선생질이라 하시면 어쩝니까?’라고 했다.


본인이 스스로 선생질하고 있다 하면 겸손한 태도라 보지만 제삼자는 왜 ‘선생’에 ‘질’을 붙일까?

농부질, 어부질, 광부질이라는 말은 쓰지 않아도 장관질, 총리질, 국회의원질이라는 말은 더러 쓴다. 과거에도 양반질이라고 비아냥거리기는 해도 노비질이란 말은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질이란 말은 있어도 아내질, 며느리질, 엄마질이라는 말은 없으니 ‘질’은 선망하는 직업이나 갑의 지위에 붙이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새도 자랑질이란 말은 써도 창피질이란 말은 없으니 ‘질’은, 예쁜 사람은 성격이 나쁘다고 해버리는 것처럼 부럽지만 별거 아니라고 여기고 싶을 때 붙이는 말 같기도 하다. ‘선생질’을 그렇게 이해해줄 선생님이 있을까?


‘질’은 걸레질처럼 반복해서 하거나 습관이 된 행동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어른들이 결혼을 앞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신랑이나 신부가 선생질한다고 하는 말을 종종 들었다. 이럴 때는 해녀들이 하는 ‘물질’처럼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반복해서 하고 있다는 뜻이지 낮추려는 의도가 있어서는 아니라고 본다. 좋은 일에 공연히 낮출 리가 있겠는가. 우리 아버지도 그랬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이라 하기 싫으면 ‘교사’라 하면 된다고 언니는 말했는데 김구 선생은 ‘선생’만으로 불려도 아무런 유감이 없을 것이다. 모두가 존경심을 가득 담아 부르기 때문이다. 도산 안 창호 선생도 그렇다. 그렇지만 지금 어디서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님’자를 붙여서 ‘선생님’이라 하면 더 좋겠다. 독립운동하라고 많은 청년을 가르친 김구를 선생질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현재의 선생님도 비질처럼 반복해서 한다는 의미라 해도 선생질한다고는 하지 않으면 좋겠다. 어감도 좋지 않을뿐더러 같은 전문직이기는 하나 도둑질이나 강도질과 같은 반열에 있는 건 즐겁지 않을 테니까.


말년에 경로회 회장을 했던 아버지는 본인이 회장질하고 있다고 했는지 궁금하다.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하늘에서 백범이나 도산 등 많은 선생님을 만나 이 나라의 미래에 관해 실컷 이야기 나누시기를 빌어본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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