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합니다

by 가을산

‘너무’라는 부사를 너무 많이 쓴다. 너무 좋아요, 너무 맛있어요. 너무 고마워요. 습관적으로 ‘너무’를 붙인다.

딸아이가 별일도 아닌 데 ‘너무’ 어떻다고 하기에 거기에 꼭 ‘너무’를 써야 하느냐고 하니 이 상황에 이 말만큼 어울리는 말이 없어서 꼭 써야 한단다. ‘그럼 진짜로 ‘너무’를 써야 할 때는 뭐라고 할래?’하니 ‘너무너무, 진짜 너무, 하면 되지!’ 한다. 다른 사람들이 ‘너무’를 쓰는 이유도 같을까?


‘너무’는 원래 ‘지나치다’라는 부정적 의미로만 썼다. 비가 너무 많이 와, 학교가 너무 멀어, 처럼 걱정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에. ‘너무’가 든 문장이 발화되고 난 뒤에는 대개 교정하거나 대비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짓단이 너무 길다? 맞게 잘라야 한다. 눈이 너무 많이 온다? 대대적인 제설 작업 준비를 해야 한다. ‘너무’는 대책이 필요할 만큼 정상에서 벗어난 걸 이르는 말이었다. 지금처럼 ‘너무 좋아’라고는 절대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언젠가부터 ‘너무’가 긍정의 의미로도 쓰이고 점점 더 많이 쓰이더니 2015년, <국립국어원>에서는 '너무'를 긍정적인 문장에 쓸 수도 있다고 선언했다. 기쁨에 들뜬 ‘너무’는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서 여기저기 온갖 형용사에 다 내려앉았다. ‘너무’ 의존증이라 할까? 이제 사람들은 모든 말에 ‘너무’를 붙여 ‘너무’ 없이는 말도 못 할 지경에 이르렀다. 너무 행복해, 너무 사랑해, 너무 딱 맞아. 심지어 ‘이건 너무 너무예요’라고도 한다.(‘너무예요’ 아래에는 여지없이 빨간 줄이 그어졌다. ‘나무예요’의 입력 오류로 보인다며) ‘너무’가 거의 감탄사가 되고 독립어처럼 쓰인다.

언어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라고 했다. 얼마든지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데 ‘너무’ 하나로 볼 일을 다 본다면 스스로 언어의 폭을 줄이고 자신의 세계를 좁히는 일이 아닐까?

요즘 아이들은 ‘헐’, ‘대박’, ‘짜증 나’로 할 말을 다 한다고 한다. 세 단어로 인생을 말하다니. 인생이 그리 쉽나? 김영하 소설가가 학생들에게 ‘짜증 난다’라는 말을 절대 쓰지 말고 다른 말로 대체해서 글을 쓰라는 숙제를 냈다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마 더 구체적이고 섬세한 표현이 나왔을 테다. 우리 아이들도 세 단어 외의 말도 찾아 쓰며 자신의 세계를 넓혔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모범을 보이면 더 좋고.


나는 긍정적인 의미로는 되도록 ‘너무’를 쓰지 않는다. ‘너무’라는 말을 처음 알고 쓸 때의 느낌 때문인지 편하지가 않아서다. 다른 사람들이 쓰는 데 익숙해져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가능한 ‘너무’의 홍수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신경을 쓴다. 예쁜 아이나 옷을 보고 너무 예쁘다, 고, 멋진 경치를 보고 너무 멋지다, 고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쓸데없는 고집일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눈을 보며 너무 고마워, 라고 말하려면 왠지 눈물이 나려 한다.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할 때면 절절한 마음에 절이라도 올려야 할 것 같다. ‘너무’는 도를 넘는 표현이어서 고마움을 빚진 듯 담담할 수가 없다.


‘너무’에서는 ‘매우’나 ‘아주’에는 없는 부정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긍정적인 의미로 썼어도 넘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돈이나 사랑처럼 좋다고 하는 건 넘쳐도 상관없을까? ‘과유불급’.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지금 너무 좋아.’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기보다 불안한 마음이 든다. ‘너무’는 평온한 상태가 아니다. ‘너무’는 '극상'의 상태다. 그 상태가 계속 갈 수는 없다. 차면 기우는 게 세상 이치. 넘치면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고 ‘극상’의 다음 단계는 그보다는 못한 상태일 테다. ‘너무 좋은’ 상태가 끝까지 유지되는 사람은 없다. 언제 다시 ‘지금 너무 괴로워’라 할지 모른다. 그러니 지나쳐서 우려가 깃든 ‘너무’라는 말 대신 ‘참’, ‘정말’처럼 넘치지 않고 부정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 다른 말을 써보자.

정말 아프고 힘들 때 너무 아프다, 너무 힘들다, 고 할 수는 있다. 아니, 해야 한다. 그렇지만 너무 맛없어, 너무 배고파, 를 입에 달고 살고 너무 싫어, 너무 더워, 너무 추워, 하며 아무 데나 ‘너무’라는 소스를 퍽퍽 끼얹으며 징징대지는 말아야겠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더위라도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과의 영결에 대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가수 김수희의 노래, ‘너무합니다’가 생각난다. 살다 보면 너무한 건 많다. 하늘을 향해 ‘정말 너무합니다!’라고 소리칠 일도 생긴다. ‘너무 신나.’ 할 때의 ‘너무’와는 차원이 다른 ‘너무’이다. 기가 막히고 분통이 터지고 속상하고 힘든 일이 수시로 닥치는 게 인생이다. 그럴 때 너무 많은 ‘너무’의 숲에 빠져 하늘만 원망하지 말고 한 걸음 물러나 ‘너무’를 살며시 빼보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너무 좋은 인생은 없다. 있어서도 안 된다. 다음 단계는 낭떠러지가 될 수도 있으니. 적당히 좋은 인생, 그럭저럭 살 만하고 가끔 꽃 한 송이가 고개를 내미는 오늘과 내일이 되길 바란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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