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나도 몰라

by 가을산

“갑순 씨, 저와 결혼해 주세요.”

갑돌이의 말에 갑순이 묻는다.

“왜요?”

“제가 갑순 씨를 사랑하는 것 같아서요.”

이렇게 말한다면 갑순이는 갑돌이와 결혼을 하려고 할까?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는 것 같다는데 어떻게 믿고?

“생각해 보니 내가 잘못한 것 같아.”

이건 사과일까? ‘잘못했다’가 아니고 ‘잘못한 것 같다’는데. ‘잘못한 것 같다’는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것 같지는 않아’로 뒤집히기도 쉽다.


사람들이 말끝에 ‘같아요’를 많이 붙인다. 눈에 보이고 몸으로 겪어 아는 뚜렷한 사실을 말할 때도 그렇게 한다. 자동차의 와이퍼가 아주 빠르게 움직이며 유리에 흐르는 비를 닦아내는데도 ‘비가 많이 오는 것 같아’ 하고, 눈으로 다져진 길바닥이 미끄러워 거북이걸음을 하면서도 ‘길이 미끄러운 것 같아’ 한다. 왜 그렇게 말할까?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말할 때도 여기 너무 좋은 것 같아, 아무개는 참 예쁜 것 같아, 그 사람은 키가 되게 큰 것 같아, 저 아기 진짜 귀여운 것 같아, 나는 걔가 너무 미운 것 같아, 음식점에 청국장 냄새가 너무 심한 것 같아, 한다. 내 코로 맡은 냄새, 내 눈으로 본 키와 외모와 귀여움, 내 가슴에 솟구치는 감정을 왜 ‘것 같다’라고 하는가?

우리 민족이 ‘겸손’을 큰 덕목으로 여겨서일까? 분명한 말투로 단정적으로 말하면 오만하다고 할까 봐 확실한 사항도 짐짓 ‘...인 것 같습니다’라고 한다. ‘합격했어요!’라고 말하는 대신 기쁨을 억누르며 ‘합격한 것 같습니다’라고 한다. 그걸 겸손하다고 좋게 보는 분위기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벚꽃이 만개한 화창한 봄날, 벚꽃 나무 아래 앉아 ‘날씨가 너무 좋은 것 같아’나 ‘벚꽃이 참 예쁜 것 같아’라 하는 건 결코 겸손한 태도를 보이려는 게 아닐테다. 그런데 왜 그냥 ‘날씨가 참 좋다.’, ‘벚꽃이 정말 예쁘다.’ 하면 될 걸 그리 말할까? 오들오들 떨면서도 ‘너무 춥다.’ 하지 왜 ‘너무 추운 것 같다’ 하는지. 연신 땀을 닦으면서 왜 ‘오늘 너무 더운 것 같아’라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기차에 앉아 있으면 ‘잠시 후 oo역에 도착하겠습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비행기에서는 조종사가 ‘우리 비행기는 곧 착륙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정언적 말투는 미덥다. ‘비행기가 곧 착륙할 것 같습니다’ 보다 백번 나은 안정감을 준다.


결혼식장에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내(남편)를 사랑하겠느냐는 주례의 말에 ‘그럴 것 같아요’ 라 하면 어떨까? 그 말에 양가 부모님과 하객들은 몹시 불안해하지 않을까? ‘예’라는 짧은 한마디는 그곳에서 천금같이 무거운 말이다. 결혼이 성립되려면 나중에 어찌 될지 모른다고 해서 ‘같아요.’라고 대답해서는 안 된다. 지금 서로 사랑하고 미래에도 사랑하겠다는 현재의 마음과 의지를 결연하게 보여야 한다.


어떻다, 대신 어떤 것 같다, 라고 하는 이유는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라고도 한다. ‘좋은 것 같은데’ 하지 않고 ‘그게 좋아. 그걸로 해’ 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책임져야 될까 봐. 결혼할 상대를 두고 ‘좋은 사람 같다’고만 했는데도 결혼 후 맞지 않는다고 ‘네가 좋은 사람 같다고 했잖아’라고 따지기도 하니 더더욱 ‘같다’를 빼고 말하기가 겁난다.


겸양의 미덕을 갖춘 우리나라 사람들은 회의할 때 의견을 잘 내지 않고 누가 내는지 지켜보기만 한다. 채택된 의견대로 실행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의견을 낸 사람에게로 마구 비난이 쏟아지니 누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겠는가?

직장인들은 점심 메뉴를 결정할 때도 소극적이다. 자신이 가자는 곳에 갔다가 맛이 없다고들 하고 ‘누가 여기 오자고 했어?’라는 말이라도 나오면 중죄인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말을 금과옥조로 삼아 가만히 있거나 ‘마땅한 데가 없으면 중국집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아니면 말고) 정도로 해야지 ‘중국집 갑시다!’ 하고 호기 있게 내지를 수 없다. ‘같아요’가 많이 쓰일 수밖에 없겠다.

나도 글을 쓸 때 ‘것 같다’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 같다’. 나 역시 단정적으로 말하는 위험을 알고 있어서다. ‘당신 말이 꼭 맞는 건 아니잖아요’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고 나 자신도 100% 확신할 수 없어서이기도 하다. 좋은 태도는 아니다. 어른이라면 자신의 말에 책임질 각오를 하고 확실하게 말할 일이다. 한 말이 잘못되었음을 알면 그때 고치면 된다. 끝없이 고쳐가며 사는 게 인생 아닌가.


‘잘 쓴 것 같아요’, ‘잘 그린 것 같아요’, ‘잘 부르는 것 같아요’라는 말은 그 방면의 전문가가 아니니 주제넘게 평하지 않겠다는 겸손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음식에 관해서라면 내 입에 맛있으면 ‘정말 맛있어요’ 하면 되지 ‘너무 맛있는 것 같아요’ 라 할 건 없지 않은가?

‘넌 웃는 모습이 참 예쁜 것 같아’ 라 하지 말고 ‘넌 웃는 모습이 정말 예뻐.’라고 말하자. ‘봄이 오니 괜히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 같아’라 하지 말고 ‘네가 보고 싶어’라고 분명하게 말하자. 분명한 말이 분명한 사람을 만든다. ‘밤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와 ‘밤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매사에 ‘...인 것 같다’고 물러서며 내 인생 같은 남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 ‘같아요’는 과감히 떼어 버리고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힘있게 하며 살아야겠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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