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인생 또다른 도전을 꿈꾸며
이제 마지막 엔딩 장면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이번 공연은 출연진들의 합창으로 마무리되는데, 이 합창곡은 한 편의 시 같은 노랫말에 따뜻한 멜로디가 얹혀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었다. 다만 가사가 헷갈려 연습 때에도 자주 틀리곤 했다. 본 공연에서는 가사를 틀리는 실수만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가사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꽃잎에 새긴 슬픈 이야기 잊으려 애쓰면 잊혀질까
향기에 스민 바다의 눈물 바람에 날리면 지워질까
잊으려 애쓰면 잊혀질까
바람에 날리면 지워질까
…(중략)…
내년 봄 거리에 꽃이 피면
약속처럼 갈매기 돌아와.”
이 노래로 세월호 유족분들께는 ‘별이 된 여러분의 가족들을 우리는 잊지 않겠다'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고, 다른 관객분들에게도 ‘우리 잊으려 애쓰지 말고, 앞으로도 기억하자'라고 전해주고 싶었다.
잠시 뒤, 마지막 합창곡을 부르기 위해 조명이 꺼진 컴컴한 무대에 다시 올랐다.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고,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차분히 노래를 시작했다. 가사를 틀리지 않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아뿔싸, 동작 하나를 놓쳐버렸다. 다행히 금세 알아차려 나 혼자만 튀는 큰 실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번 공연이 끝나면 또 언제 다시 설 수 있을지 모르는 무대였다. 앞선 장면들에서는 긴장한 탓에 관객석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지만, 문득 마지막 합창곡만큼은 관객을 보며 노래하고 싶었다.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그들에게 온전히 닿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관객들을 바라보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눈물을 훔치고 있는 관객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들의 눈에는 슬픔과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 역시 또 한 번 울컥하며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이내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목이 메어 노래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노래는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었지만, 나는 눈물을 삼키느라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차라리 조명이 나를 비추지 않기를 바라며 조명이 닿지 않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래를 부를 수 없다면, 동작이라도 끝까지 맞추자는 생각뿐이었다.
그제야 연출 선생님의 오래된 조언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연습할 때 최대한 감정을 끌어내 봐야 해요.
그래야 실제 공연에서 감정이 올라와도 당황하지 않아요.”
연습을 실전처럼 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지만, 초보 배우였던 나는 그 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무대 위에서 제대로 쓴맛을 본 셈이었다.
부디 내가, 그리고 우리가 전하려던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잘 전해졌기를 바라며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무대를 내려왔다. 마지막까지 감정에 휘둘려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쉬웠다. 그럼에도 관객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던 소심한 배우가, 관객에게서 감정을 건네받고 또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작년 공연이 끝난 뒤 크게 남았던 허무함과는 달리, 이번 공연을 마치고 난 뒤에는 뿌듯함이 더 컸다. 공연 후기를 찾아보며 우리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닿았는지를 살필 만큼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이번 도전을 통해 가슴 떨리는 설렘을 느꼈고, 무대 위에서의 전율과 감동이라는 낯선 경험도 했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진심으로 원한다면 나이도, 성별도, 사는 곳도, 직업도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내가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이제는 공연의 주인공이 되기보다,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싶다.
다시 무대에 오를 것이냐고 묻는다면, 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또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분명 YES다.
소심한 40대 직장인이 뮤지컬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이 기록이,
독자 여러분께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라며 부족했던 나의 첫 브런치북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