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각 없이 33년을 살다가 갑자기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결심한 이유
때는 2021년, 만 나이 33세를 지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매사에 구속되길 싫어하고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나는
우리나라의 결혼이라는 제도에 갇혀서는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어서
늘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밝은 성격 덕분인지? 큰 키 덕분인지? 연애는 쉬지 않고 할 수 있었고,
연애를 하지 않을 때에도 늘 썸 타는 상대는 있었다.
당연히, 이렇게 평생 연애만 하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결혼이라는 제도부터 이미 생각만 해도 답답한 나에게 아이를 낳는다는 건 애초에 선택지에도 없었다.
굳이 따져보자면 결혼을 할 확률은 5:5 ※완벽하게 나와 잘 맞는 (사실은 나에게 모든 걸 맞춰주는)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가정 하에,라고 생각했고
아이를 낳을 확률은 10%도 안될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10%를 남겨뒀던 이유는 한 가지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생긴 호기심 같은 거였다.
아마도 25살 즈음, 첫 회사에서 만난 팀장님과의 대화였다.
당시 나에게 한없이 무섭기만 한 팀장님이 계셨는데,
자녀 얘기를 할 때는 한없이 부드러워지고 표정이 행복으로 가득 차 보이는 모습이 의아해서 물어봤다.
"아이를 낳으면 뭐가 그렇게 좋아요?"
"아이를 낳고 나면 알게 돼. 이 세상에 내가 전부인 존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자부심을 주는지."
워낙 오래된 기억이라 들었던 대답을 그대로 옮기지는 못하지만, 대략 이런 내용의 대답이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중략)
존재의 본질적인 의미는 상대방에게 '인식됨'으로써 생기는 거구나,라는 걸 깨닫게 해줬던 시.
팀장님의 대답을 듣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로 인해 내 존재의 의미가 우주가 되는 경험 같은 걸 할 수 있는 거구나. 그건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강렬했던 대화의 잔상이 오래 남아, 누군가 아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오면
''아이가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는 해요." 정도로 대답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 정도의 호기심으로 육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이겨낼 수는 없었고,
특히 아이를 낳으면 경력이 단절될 거란 구체적인 두려움이 막강했다.
일을 좋아한다는 자부심이 있는 나에게 경력 단절은 그야말로 사회적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그 정도 체감의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안온하게 지내던 33살 당시, 연애를 하던 남자친구는 외모와 성격이 준수하고 나와 연애 스타일이 잘 맞는 상대였다.
다만 투자성향으로 본다면 늘 '안정형' 이던 나와 달리,
너무나 쉽게 전 재산을 주식에 올인하던 '공격투자형' 그 자체였던 그는, 나에게 결혼 상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어차피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나는 결혼이 급하지 않았고,
그래서 헤어짐이 급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의 경제적 가치관은 내가 문제 삼지 않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적당히 만족스러운 연애를 하고 있던 나에게,
어느 날 느닷없이 모든 생각을 리셋 시켜 버리는 사건이 하나 생겨버렸고,
그 사건 이후 나는 그의 경제적 가치관을 문제 삼아
한 치의 망설임과 미련도 없이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어이없을 정도로 평범한 날이었다.
말 그대로 평범하게 야근을 하던 어느 날 밤,
그날따라 동료들은 나보다 일찍 퇴근했고,
그날따라 본부 상무님은 야근을 하시어 단둘이 사무실에 남아있었다.
상무님에 대한 설명을 더하자면, 당시 내가 가장 존경해 마지않던 내 커리어의 목표 같은 분이셨다.
나이는 50대 중후반 즈음이셨던 것 같다.
결혼을 포기하고 일에 전념하신 이 시대 대표 여성 리더상 같은 분.
회사 생활을 하며 수많은 임원들을 겪어봤지만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 분을 모신 건 처음이었다.
모든 의사 결정 자리에서 늘 가장 필요한 질문을 하신다는 느낌을 받았고,
가장 이해 가능한 결정을 하시는 분이셨다.
공격적인 말은 하지 않으셨지만 매서웠고, 권위적이지 않았지만 카리스마가 있었다.
딱, 그분처럼 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임팩트가 컸었던 것 같다.
그날, 상무님이 먼저 퇴근하시며 나에게 "수고했다" 한마디를 남기시고 가는데
그 뒷모습이 이상하리만치 슬로모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나의 뇌리에 한 가닥 뜬금없는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스치고 지나갔는데,
상무님의 퇴근 후 일상이 나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상무님의 퇴근 후 일과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보다 훨씬 좋은 동네에서, 훨씬 넓은 집에서, 훨씬 맛있는 음식을 먹고, 훨씬 고급스러운 어메니티를 사용할지언정, 일과는 나와 비슷할 것 같았다.
그분의 퇴근 후 일상이 너무 쉽게 예측이 가능했다.
나도 좋은 동네는 가봤고, 넓은 집도 구경해 봤고, 맛있는 음식은 당연히 먹어봤고,
고급스러운 어메니티쯤이야 무리해서라도 사용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위에 나열한 단순한 사물적 경험이 아닌 일 하는 환경이라든지
인간관계라든지 하는 다른 차원의 경험들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할 차원의 경험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내가 이대로 오늘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고 적당히 안온한 날들을 이어가다가
어느새 커리어 목표에 도달한다고 해도,
내가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이나 행복이라는 건 지금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시시해졌다.
그 자리에서 내 나이 50살, 60살을 그려보게 되었고 이미 다 살아본 듯한 피로감이 밀려왔다.
어떤 날에는, 예측 가능한 삶이 안정적이라 좋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은데
그날따라 '예측 가능한 삶이란 시시한 거구나.' 싶은 깨달음이 왔다.
자연스럽게 그 시간, 그 자리에서
"아이는 낳아야겠다." 다짐했다.
한 번 태어난 인생, 경험해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최대한 많이 경험해 보고 싶다는 게 내 삶의 대전제였다.
그래서 새로운 경험이라면 편견 없이 도전해 보고자 하는 삶을 살아왔던 것 같은데
그 안에 결혼과 아이가 없었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다짐 이후 낯선 평온함이 밀려왔다.
어떤 만남은 너무나 운명적이라 "될 인연은 결국 된다."로 설명되는 것처럼,
당연히 내 것이었어야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와 "결국 하게 되었다."
그렇게 갑자기, 그렇게 느닷없이, 내 삶에 새로운 목표가 생겨버렸고
그에 상응하는 기준이 처음부터 다시 세워졌다.
아이를 낳으려면, 결혼을 해야 했고
결혼을 하려면, 제도의 답답함을 이겨낼 만큼 나에게 필요한 자유를 허락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러려면 나라는 사람의 성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이해심은 물론이거니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선순위가 무조건 '나'라고 말해 줄 수 있는 비이성적인 사람을 만나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육아를 함께 책임져 줄 수 있는 가정적인 사람이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런 사람을 34살 5월에 만나, 35살 4월에 결혼했고, 허니문 베이비로 임신했다.
그리고
36살 1월에 출산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날 이후, 모든 게 순리대로 흘러갔고
지금은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고 있다.
감사히도 '당연히 해야 하는 생각' 같은 것이 불현듯 나에게 왔고,
그것이 나를 스쳐지나가지 않도록 붙들어 놓았던 덕분에 나에게 이런 삶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