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은중과 상연
“서른인데 1억 모았대.”
6년 전, 엄마가 엄친딸(엄마 친구 딸)이 결혼하는 남자를 언급하며 이렇게 얘기해줬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래, 그 정돈 모아야지. 성실한가봐! 네가 만나는 사람도 그 정돈 모은 사람이지?"
몇 살에 얼마를 모았다는 '팩트'.
그것이 어른들이 보기에 성실의 기준인 것처럼 보였다.
20대와 30대를 지나며,
단편적인 숫자로 사람이 평가된다는 생각이 진해졌다.
나이. 연봉. 적금. 자산을 한 줄의 표로 세워 놓고 비교했다.
그 사람의 출발선이나,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는
아예 평가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각자의 삶에 대한 이해, 디테일은 전혀 없었다는 얘기다.
누군가는 부모의 지원으로 전세금을 억대로 받아 오피스텔에서 돈을 모은다.
누군가는 서울 본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부모차도 타 가며 돈을 모은다.
누군가는 고시원에서 밥값, 전기세를 줄여가며 돈을 모은다.
전자는 4년 만에, 후자는 6년 만에 1억을 모았다.
전자가 더 성실한 걸까?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 부잣집 딸이었던 상연은
모든 걸 잃고 처음으로 자기 힘으로 살아야 하는 상황에 부딪힌다.
몸을 바쳐 일하지만 빚에 허덕이고, 가족은 오히려 짐이 된다.
결국 돈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돈이 전부다.”
현실의 무게를 직시한 한숨이다.
같은 대학교 학생이라도, 두 대학생의 무게는 전혀 다르다.
엄마가 반찬을 해다주고, 가끔 취미로 알바를 하는 대학생과
직접 알바를 3개씩 뛰며 공부까지 해야 하는 대학생.
그들을 '너희는 다 똑같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어른들의 '편견'에 가깝지 않을까.
타인의 성과를 존중하되, 숫자만 보지는 말자.
결과는 숫자지만, 삶은 서사이기에.
누가 몇 살에 얼마를 모았는가보다
어떤 과정을 지나 지금의 그가 되었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자.
한국 사회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단편적으로 '얼마 모았느냐', '얼마나 있냐'고 따지기보다,
'어떻게, 어떤 태도로 살아왔느냐'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그것이 내 아이가 살았으면 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