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너를 지켜볼 뿐이야
“엄마는 너를 지켜볼 뿐이야”
임신했을 때 나는 매일매일 불안했다. 새벽 두 시, 거실 소파에 앉아 가만히 배를 쓰다듬었다. “아가야, 엄마가 지금 너무 화가 나고, 너무 슬퍼. 그런데 엄마가 이런 감정을 느끼면 네가 그대로 가져가게 되는 걸까?” 나는 공포에 질린 채 조용히 속삭였다.
생각해 보면, 임신 전까지 나는 감정이라는 걸 그렇게까지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짜증 나면 툴툴거리고. 그게 다였다.
하지만 내 몸 안에서 누군가가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 감정 하나하나가 그 아이를 조각하는 것만 같았다. 마치 내 불안이 태반을 타고 들어가 그녀의 성격을 만들고, 내 분노가 그녀의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질 것만 같은 느낌.
아침에 눈을 뜨면 악몽 같았다.
‘이게 진짜 내 인생이라고?’
‘진짜 남편이 그 여자랑 잠자리를 가졌어?’
‘이걸 겪으면서도 나는 이 아이를 지킬 수 있을까?’
나는 두려웠다. 너무 두려웠다.
그러다 상담 선생님이 찰흙을 건넸다.
“이걸로 뭐라도 만들어보세요.”
나는 손끝으로 찰흙을 꾹꾹 눌러가며 형태를 만들었다. 내 안에 있는 아이. 태반에 둘러싸여, 작은 주먹을 쥔 채 눈을 감고 있는 당근이.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뱃속에 아이는 내 감정을 따라 흘러가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화를 내든, 슬퍼하든, 불안해하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내 감정이 이 아이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감히, 그럴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죄책감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내 감정은 나의 것이고, 아이는 그녀의 삶을 살아갈 것이었다. 나는 그저 아이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니까, 괜찮다.
내가 아이를 뱃속에 품고 모든 감정을 공유했다해도 아이는 아이의 모습대로 자랄 거다.
내가 모든 걸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너를 지켜볼 뿐이야.
너를 조각하려고 하지 않고, 네가 있는 그대로 자라날 수 있도록 곁에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