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여자, 유정화… 첫사랑
정화는 영석이가 소개해줬다. 영석이는 고교 시절부터 여자관계가 복잡한 놈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아예 뚜쟁이였다.
나는 대학 1학년 때 돈암동 비인이라는 클래식 음악다방에서 디제이를 하고 있었고, 영석이는 홀 서빙을 했다. 어느 날 영석이가 내게 “너는 왜 여자친구를 안 사귀냐”라고 묻기에, “내가 좋아하는 여자들은 나한테 관심이 없다”라고 했더니, 내 맘에 들 만한 여자를 소개해주겠단다.
그렇게 만난 여자가 유정화였다.
그런데 또 다른 친구 민기 놈이, 자기가 진작에 찜해둔 여자가 정화라며 나보고 포기하란다.
나는 정화의 마음이 중요하니 정화에게 직접 물어보자고 했다. 물론 정화는 나를 선택했다. 일을 마치고 정화와 사관과 신사를 보러 갔는데 민기 놈이 따라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치근거리는 걸 피해 밖으로 나왔더니 민기 놈도 따라 나온다.
민기가 “생맥주 사줄 테니 같이 가자”라고 해서 “우리끼리 갈 테니까 꺼져라”라고 했는데도 계속 질척거렸다. 결국 한 방 날렸다. 그렇게 민기 놈을 완력으로 제압했다.
그 후 민기와 소원해져 한동안 못 만났다.
정화는 무용과 지망으로 재수 중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자주 만나는 걸 주저했다. 일주일에 한 번쯤 보다가, 입시가 다가올수록 오히려 만남이 잦아졌다.
어느 날 데이트 후 정화를 집 앞까지 바래다줬는데, 그녀는 과감하게도 그녀의 집 앞에서 갑자기 내게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마침 장을 보고 오시던 정화의 어머니께 그 장면을 들켰고, 얼떨결에 첫인사를 드리게 됐다. 정화 어머니는 그 상황을 보고도 너무 무덤덤했다.
입시를 마친 정화와는 거의 매일 데이트했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집에도 드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외출을 하면서 집에 우리 둘만 남게 됐다. 그날이 정화와 처음 몸을 섞은 날이다. 나는 두 번째 경험이었고, 정화는 첫 경험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정화와 나는 밤늦도록 술을 마시다 마지막 차를 놓쳤고, 가까운 우리 집까지 걸어갔다. 정화네 집에 전화해 “우리 집에 간다”라고 허락도 맡았다.
내 방에서 술을 더 마시며 웃고 떠들다가 새벽녘에 또 몸을 섞고 뒤엉킨 채 잠이 들었는데, 방문을 열고 들어온 우리 어머니께 그 모습을 들키고 말았다.
상황을 모두 짐작한 어머니의 추궁이 이어졌고, 결국 “군대 다녀오면 서둘러 결혼시키자”는 쪽으로 양가가 합의했다.
그즈음 정화는 세종대 무용과에 합격했고, 우리 둘은 거의 부부처럼 지냈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