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주인: 아물어가는 누군가의 세계를 위해

영화 <세계의 주인(2025)> 리뷰

by 더 레터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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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열여덟 여고생 이주인. 그나마 특징이라면 발랄한 사고뭉치 같은 점. 인싸와 관종 사이의 삶을 살던 어느 날, 주인은 전교생이 참여한 서명 운동을 유일하게 반대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 도착한 쪽지는 그녀의 삶을 뒤바꿔놓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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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아닌 ‘세계’의 주인

사고뭉치, 인싸, 관종. 조금 과할 정도로 긍정적인 주인의 일상. 키스를 했던 남자친구와 헤어져도, 봉사활동을 다니거나 태권도를 배우는 등 그녀의 삶은 계속된다. 반장(수호)이 건넨 투표에 대해 반대를 표하기 전 까지는 말이다. 그때부터 주인의 책상에는 의문스러운 쪽지가 놓이기 시작한다. 그녀의 진정성과 정체에 대해 의심하는 짧은 문장들. 이 몇 마디의 말은 상처를 감추기 위해 취했던 주인의 긍정을 파고든다. 주인의 세계는 수호의 세계와 부딪히며 여러 갈등을 직면하게 되고, 그 갈등으로 인해 주인의 세계는 여러 세계들과 계속해서 부딪히며 수많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세계’와 ‘세상’은 다르다. 세계는 세상의 하위 집합이자, 세상을 우리가 서 있는 중심으로 바라보는 시점을 세계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세계는 여러 개의 층위를 지닌다. ‘우리’의 세계, ‘너희’의 세계 등. 때론 ‘내’ 세계 속에 감춰진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는 같은 ‘세상’ 속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기에, 타인의 세계가 개벽하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이를 단순한 붕괴라고 간주하게 된다. 나를 제외한 모든 세계들과의 경계와 적대시.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보편적인 경향을 두고 부박하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인간의 뇌는 생각하기 편한 방식으로 일반화하도록 진화해왔으니까. 예상치 못한 타자의 변화라는 불청객이 찾아올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사한 경향을 보일 것이다. 필자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그렇지만 이러한 ‘당연하다는’ 반응은 상처입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당연하지 않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주인의 세계와 다른 세계들의 ‘당연하지 않은’ 마찰을 조명한다. 정확히는, 그 마찰까지 이어지는 각자의 세계 속 가장 중요한 마음외부적인 반응으로 나타낸다. 작중 등장하는 태선, 미도, 유라, 대한, 수호의 세계는 주인의 세계와 부딪히면서 이를 이해하거나, 거부하거나, 회피하거나, 배려하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친족 성폭력’이라는 사건의 비극성과 특수성으로 인해 주인의 세계와 다른 세계들은, 그들의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깊은 마음. 즉, ‘동기’를 타인에게 전달하기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성은 역설적으로 비극적인 소재로부터 보편적인 회복이라는 대주제까지의 여정을 이어가게끔 만드는 서사적 딜레마로써 작용하게 된다. 즉, 무력함과 책임감이 공존하는 수호의 감정, 죄책감과 서운함이 공존하는 유라의 감정, 상처 앞에서 냉정한 반응을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했던 태선의 감정, 규율을 어겨 분노하는 미도의 반응, 미도와 주인을 배려하는 대한의 반응 등. 주인을 둘러싼 타인들이 보이는 여러 복합적인 반응은 주인의 상처를 알게 된 후 오히려 주인을 향한 ‘사랑’의 변주로써 느껴지게 된다. 그녀를 아껴주고 싶다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행동으로써 나타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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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성과 사랑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성폭행이라는 사건이 지니는 특수성뿐만 아니라 ‘상처’라는 개념이 가지는 보편성과 유대를 통한 회복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회복’이라는 행위는 주인과 그녀의 세계에서 이름모를 누군가의 세계로 향한다. 하지만 '회복'이 주인으로부터 타인의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주인의 마음 속 상처가 가진 역할을 상기해야 한다. 주인의 웃음 속 마음의 상처에만 관심이 매몰된 타인과 세상은, 정작 그 상처 또한 주인의 마음이자 주인의 세계 속 일부분임을 망각하고 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상처는 아물며 자신의 존재를 영원히 각인시킨다. 새 살이 돋은 현재의 살갗은 그 상처가 존재하기에 비로소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즉, 우리의 시선 속 타인의 상처는 실제 타인의 상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주인은 피해자이며 생존자이지만, 이주인이라는 세계의 주인이다. 주인은 같은 상처를 공유하는 이들과 봉사활동을 다니지만, 친구들과 릴스를 찍으며 노는 고등학생이다. 주인 또한 스스로 묻어버리려고 한 과거의 상처가- 정확히는 스스로 아파하는 법을 잊으려 한 주인의 감정이, 세상이라는 외부의 공기에 노출되어 비로소 그 고통스러움이라는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주인의 고뇌와 혼란은 세차장 씬에서 정점을 찍으며, 그녀의 세계 속 한 귀퉁이에 묵혀낸 미련과 후회 그리고 울분이라는 입에 담기도 아픈 감정들을 쉴 새 없이 토해낸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태선(주인의 엄마)이 내뱉은 “한 바퀴 더 돌까?” 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이 대사는 대부분의 타인들이 변해버린 주인과 그녀의 세계 속 상처에 매몰되어 그녀를 어려워하던 것과 달리, 주인이 웃음 속에 감춰두었던 모든 모습마저 긍정하는 이들도 그녀의 세상 속에 있음을 관객에게 인지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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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과 그녀의 세계를 괴롭힌 수많은 시선 속, 가장 그녀를 괴롭게 한 것은 수호의 시선으로써 귀결되는 ‘드러난 시선’과 그녀의 책상에 놓인 쪽지로써 귀결되는 ‘드러나지 않는 시선'이다. 카메라는 여러 시선의 시점을 대신하여 주인을 바라본다. 수호의 시선으로 보이는 주인은 앞모습을 비추며, 쪽지를 바라보는 주인은 뒷모습을 비춘다. 작중 내내 주인의 1인칭 시점을 따라간 관객은 이 두 시선을 ‘주인의 세계’를 파멸시키는 악한 시선으로 생각하게 되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 모든 시선은 주인으로 인해 사악함을 잃어버리고, 따스한 생명력과 함께 ‘주인을 위한 시선’이라는 본래의 목적이자 선함을 되찾게 된다.

이러한 플롯 구조는 주인과 그녀를 둘러싼 외부 세계, 두 가지의 시선들에게 ‘이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는 각자 나름의 사정’을 관객에게 납득시킨다. 그리고 더 나아가, 주인과 외부 세계가 대립하고 갈등하며 화해하는 과정 속에서 두 시선은 나름대로 각자의 입장을 상대방에게 납득시키면서도 어느 한 쪽의 시선으로 완전히 수렴되지 않게끔 ‘자립성’을 부여한다. 즉, 관객은 주인이 외부 세계를 변화시켰음을 인지함과 동시에 외부 세계 또한 주인을 변화시켰음을 인지하게 된다.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주인의 세계와 외부 세계는 각자 서로의 아픔을 이해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가장 원하던 것을 얻게 된다. 그것은 각자의 독립된 세계가 엮이게 된 하나의 ‘세상’인 것이다. 두 가지 세계가 하나의 세상으로 통합되기 위한 촉매. 그것은 바로 ‘사과’이다. 사과라는 오브제는 단순한 언어유희로써 존재하지 않는다. 사과는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갈망하던 ‘복수’라는 불완전한 성과로써의 과실이자 목표이며, 우리가 평소에 즐겨 먹듯이 보편적이고 단순한 존재이기도 하다. 즉, 사과는 주인이 한 입 베어물거나, 책상에 놓여 있는 등 그녀의 세계 곳곳에 놓여 있는 존재이면서 그녀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된다. 즉, 사과는 주인의 세계이자 주인을 나타내는 매개체로써 변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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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영화가 갈등을 그려낸다면, <세계의 주인>은 갈등이 벌어지는 이야기를 역순행적으로 되짚어 올라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서로에게 상처가 된 시선이 시작된 것은 사실 서로를 위해서였다는, 상처의 악순환은 주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세계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이 영화 속 주인의 세계는 우리의 세계와 달리 상처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화해'하게 된다. 전혀 해결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여러 갈등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때론 우리 생각보다 더욱 가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눈길 사이를 스쳐 지나갈수도, 아니면 해결할 방법을 알지만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할수도 있다.

하지만 이주인은 당당하게 사과를 한입 베어문다. 그녀의 세계는 타인들의 염려와 다르게 사과꽃이 만개한 정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향기를 느끼게 된 쪽지의 저자 또한 자신의 세계에 일어난 여러 상처가 아물 수 있음을 믿게 된다.

“점차 아물어가는 우리의 세상을 통해 너 또한 치유받기를.” 이 말은 <세계의 주인>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단 한 줄의 문장이자, 이 영화가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 세상을 향해 건네는 작고 소중한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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