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지옥을 버티기로 했다-9
법은 공평한 것 같지만 참 불공평하다.
1년이 넘게 민사소송을 해오면서 그런 생각은 더 굳혀졌다. 민사 초반 난 임대인의 통장, 부동산 압류신청을 함께 했다. 통장은 텅텅 비었지만 임대인을 압박하는 목적이었다.
난 당연히 받아들여질 줄 알았다. '임대인이 나의 보증금을 주지 않았다'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 것 아닌가. 내가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조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부동산 압류신청은 기각됐고, 통장 압류신청은 두 번째만에 받아들여졌다.
법원은 부동산, 통장 압류신청이 '과하다'라고 본 것 같다. 임대인의 통장과 집을 압류하면 임대인이 내 돈을 갚을 능력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인지? 채무를 상환할 능력이 사라지는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닌데도 말이다.
임대인보다 급한건 임차인이다. 돈이 사라진 쪽 아닌가.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통장 압류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통장 압류를 통해 알게 된 임대인의 잔액에 또 한번 화가 났다.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된통 당한 것이다. 시간 버리고 비용 버려서 얻은게 이것뿐이었다. 답답했다.
이땐 법원과 임대인이 마치 공범 같았다. 똑같은 사기꾼 같았다. 또 '법원이 전세사기를 일으킨 임대인의 사정까지 봐주나보다'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12월 민사소송 판결문을 받은 후 나는 법에 대해 또 실망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임대인은 답변서를 제출했다. 블라블라. 이러쿵저러쿵했지만 결국엔 '돈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내가 집을 인도하지 않아 본인도 나에게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개소리도 있었다.
그렇지만 법원은 그 개소리를 일부 인용했다.
판결문의 주문은 "피고(임대인)는 원고(임차인)로부터 피해주택을 인도받음과 동시에 원고에게 1억1500만원을 지급하라"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집에 대한 권리를 확보(임차권등기명령, 비밀번호 변경 등)하고 돈을 주지 않아 짐을 놓은 것도 법원은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다'로 법원은 해석했다.
전세사기가 늘고 있지만 법의 판단은 후진적이다. 얼마 전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범의 판결을 봐도 그렇지 않은가. 고작 7년형이라니. 추가 재판을 통해 15년형으로 늘어났지만 충분하지 않다.
또 공범 30명 중 15명이 무죄판결을 받았다. 무죄라니. 이게 말이 되는 처사인가. 사건의 피해액만 300억원이 넘고, 피해자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법이 가해자에게 이렇게 자비로우니, 사기를 당한 피해자만 이렇게 괴로울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사기치기 좋은 나라'라는 이야기가 그냥 나온게 아니었구나. 판사도 전세사기를 당해봐야 정확한 판결을 내리겠구나. 요즘도 난 이런 생각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