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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쌈밥'을 먹다

4기 암환자의 슬기로운 치병 생활

by 암슬생

어릴 적 밭에서 직접 키워 점심때 바로 씻어 먹던 쌈밥의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사실 요즈음 어린아이들이야 채소는 물론 쌈밥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만자씨(암슬생작가) 어릴 때만 해도 여름에 쌈밥을 참 많이 먹었다.


고기가 귀하고 반찬거리도 5일장을 가야 구할 수 있던 시절이니, 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주요 반찬 재료들이었다. 배추, 오이, 가지, 고추, 깻잎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건 아마도 쌈 채소가 아니었나 싶다. 소쿠리에 몇 가지 종류의 상추와(상추도 종류가 참 다양했다), 치커리, 당귀, 쑥갓 등을 뜯어 담아 씻은 후 시골된장에 쌈을 싸 먹으면 그 맛이 기가 막혔다.


여름에는 거의 매일 먹었는데도 질린다는 느낌은 없었다. 배고픈 시절의 웃픈 추억인지 정말로 맛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쌈밥을 떠올리면 군침이 돌곤 한다.


요즈음도 쌈 채소와 쌈밥을 즐겨 먹는 만자씨지만 어릴 적 그 쌈 채소의 맛을 느끼기가 어렵다. 쌈이 크기는 크고 풍성한데 쌈 특유의 쌉싸름한 맛과 향이 전혀 없다.


가끔 텃밭에서 기른 유기농 쌈 채소를 사서 먹곤 하는데 그나마 쌈 채소 특유의 향과 맛이 난다.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이웃님께서 얼마 전(7. 11일) 텃밭에서 직접 기른 쌈 채소와 호박을 선물로 주셨다.


이웃님이 우연히 만자씨와 같은 병원에 다니게 되었고, 얼마 전 직접 뵙기도 했는데 다음번에 채소 가져오신다고 하더니 진짜로 쌈 채소와 호박을 가지고 오셨다.


그 귀한 채소를 아이스박스에 정성스레 포장해 직접 가져오셨다.


이 쌈 채소는 그냥 평범한 쌈 채소가 아니다. 이웃님 또한 만자씨와 같이 항암을 하는 중이다.


암을 극복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귀농생활을 하고 있는데 정원에 꽃과 나무를 가꾸는 재미로 항암의 고통을 극복하며 사신다고 한다.


여름에는 텃밭을 가꿔 각종 채소들을 직접 길러 먹는다고 한다. 그야말로 유기농 채소인 것이다.


2박 3 일 입원 항암을 하느라 만자씨 보다 이틀은 먼저 병원에 오셨는데 쌈 채소가 시들고 상할까 아이스박스에 얼음까지 넣어 챙겨 오셨다가 지난 금요일 만자씨를 만나 직접 전해 주셨다.


본인 항암 하느라 챙길 것도 많은데 그 귀한 쌈 채소를 손수 챙겨서 그것도 상할 것을 염려해 아이스박스에 정성스레 포장까지 해서 전해 주시니, 그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뭉클했다.




집으로 가져와 그날 저녁 수호천사와 쌈밥을 먹었다.


쌈 채소를 씻고 시골 된장을 준비했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계란찜도 했다. 그리고 열무김치와 오이지 등 밑반찬을 꺼내 저녁을 먹었다.


쌈을 싸서 한입씩 먹고는 만자씨와 수호천사가 서로 눈을 마주 보며 그 특유의 고개 끄덕임을 했다.


'음~~~'

만자씨가 신음을 토하듯 반응을 했다.


"호호, 이거 진짜 맛있다. 쌉싸름한 맛이 너무 좋은데?"

수호천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 척을 날렸다.


상추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았고, 그 맛은 쌉싸름한 게 어릴 적 시골에서 먹던 바로 그 맛이었다.


시골 된장과 너무 잘 어울려 다른 반찬은 거의 손도 대지 않고 쌈밥만 먹었다. 몸에 좋은 유기농 채소를 먹는다고 생각하니 맛도 좋은데 기분까지 좋아져 행복한 저녁을 먹었다.




만자씨는 쌈밥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건강에도 좋고 소화도 잘 되고 입맛이 없을 때 입맛을 살리는 특효약이기도 하다.


요즈음은 상추가 거의 배추 크기만 한 것들이 많다. 먹어보면 여지없다. 쌉싸름한 맛과 향은 전혀 없고 그냥 싱겁고 향도 없다. 당연히 덜 찾게 되고 쌈밥을 예전보다 덜먹게 된다.


그런데 이번 이웃님께서 주신 쌈은 너무 맛있어 금요일 저녁에 그렇게 많이 먹고 오늘 점심때 또 먹었다.


고등어 한 토막을 굽고 다른 밑반찬을 곁들여 먹었는데 오늘도 거의 쌈밥 위주로 먹었다. 여전히 맛이 있었다.


더운 여름 직접 밭에서 상추를 기르고, 그걸 또 뜯어서 아이스박스에 정성스레 포장해 멀리까지 가져와 만자씨에게 선물로 주신 이웃님께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만자씨는 드릴 것도 없는데...


본인도 항암으로 고생하시면서 같은 처지의 만자씨를 위해 쌈 채소와 호박을 선물해 주신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 건강해져야겠다.


아직 만자씨에겐 맛있게 생긴 호박이 남아 있다. 그 호박은 또 얼마나 맛이 있을지...


시골된장을 넣고 칼칼한 된장찌개를 끓이고 열무비빔밥을 곁들여 먹으면 천국이 따로 없을 듯하다.



#항암 #쌈채소 #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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