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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올라가고 나는 내려가고.

아파도 아플 수 없는 날.

by 윤슬

새해부터 근 두 달간의 길고 지치는 방학을 보냈다. 그 여파였을까. 몸이 결국 버티지 못했는지, 새 학기가 시작된 후 갑자기 주말에 림프절에 염증이 생겨 목 옆부터 어깨까지 고통이 엄습해 왔다.


근 이주일가량 스테로이드가 섞인 약을 먹으니, 차츰 피로감과 통증, 열감이 가라앉아 이제야 숨통이 트인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긴 방학에서 벗어나 유일하게 편안히 외출할 수 있는 곳인 특수학교에 가서일까. 너는 더욱 신나고 활기를 찾았다.

반대로 나는 그동안 붙잡고 있던 예민한 긴장을 풀어서인지 그대로 면역력이 떨어졌었나 보다.


너는 해마다 체력도 키도 점점 커 올라가는데, 나는 너와 반대로 점점 체력이 내려만 간다. 언제까지 너를 받쳐주고 안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는 최대한 너의 받침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한다.


예전의 나는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약도 먹지 않는 쇠고집이었는데, 지금은 아프면 너와 센터에도 갈 수 없고, 너의 일상이 내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아플 수가 없다.


그래서 나를 바꿨다.


너를 평생 지켜주어야 하는 나를,

차가운 그 길을 걷는 너에게 따스함을 주기 위해서, 나는 아프면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꾸준히 건강검진도 받고, ADHD 검사도 하고,

우울함과 무기력함에 지친 일상을 위해 약도 먹으며 힘을 내본다.


예전에 주변 엄마들에게 푸념한 적이 있다.


“부모들도 연차가 필요해.”


내 일상의 쳇바퀴는 멈추고 싶어도 굴려야만 한다.

내가 굴리지 않으면, 너의 쳇바퀴도 굴러가지 않으니까.


가끔은 너무 아파 이를 악물고 진통제를 삼키며 너를 돌보다가 서러워 울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가슴 아픈 순간은, 말 한마디 못 하는 네가 아파서 울 때였다.


너 또래의 아이들은 “어디가 아파.”, “힘들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네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짜증을 내는 것뿐이었다.

나는 처음에 그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내 몸이 아픈 것까지 겹쳐 괜히 화를 내기도 했다.


언제까지 내 아픔을 참아 가며 너를 지켜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건강해야 너를 지킬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평생 먹지 않던 영양제도 먹어 보고, 병원도 다니고.

달라진 내 모습을 보며, ‘이게 네 방식의 효도인가?’ 싶어 웃음이 나기도 했다.


여전히 네 앞에서 아픈 티를 내 봤자,

넌 전혀 모른 채 우당탕거리며 사고만 치겠지.

그래도 나는 적어도 네가 아플 땐 바로바로 알아차리고 싶다.


첫 번째 소원은, 네가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는 것.

두 번째 소원은, 네가 아플 때 “여기가 아파.”라고 말해 주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널 지켜줄 수 있으니까.


중증 자폐를 가진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길지 않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아픈 곳에 대한 명확한 표현이 어려워서 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래도록 너와 손잡고 걸으며,

내 눈이 감기는 순간까지 널 지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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