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은 일하는 게 설렐까요?
피곤하거나, 죽도록 피곤하거나 둘 중 하나
지난 2년간 싱가포르에서 승무원으로 근무했다. 10년이 넘은 나의 오랜 꿈이었기에, 그 어떤 어려움도 감내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최종합격 통보를 받고 입사까지 두 달여의 시간이 내 인생에서 제일 설레었던 시간이었다. 그 후 2년간 정신없이 바빴고 지난 9월 고국으로 돌아와 백수의 삶을 살고 있다. 승무원 시절 제일 바랬던 것이 매일매일 자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밤비행이 있어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낮에 대뜸 잠이 오진 않으니 항상 수면부족에 시달렸다. 승객분들이 how are you?라고 인사해 오실 때마다 언제나 웃으며 좋다고 했지만, 사실 승무원의 상태는 피곤하거나, 죽도록 피곤하거나 둘 중 하나면 거의 맞다.
또 해외에서 힘들었던 것이 아플 때였다. 싱가포르에서는 사람들이 아프면 클리닉이라는 곳을 간다. 병원은 정말 중병이 있을 때 가는 곳이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건강상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때 가는 곳이 클리닉이다. 내가 느끼기에 클리닉들의 의료서비스의 질은 높지 않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소위 MC(medical certificate/회사에 병가를 신청하기 위한 진단서)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클리닉을 찾아간다. 의사도 그걸 알기에 그저 환자가 필요한 만큼의 병가를 간단하게 발급해 준다. 한국만큼 의료보험이 잘되어있는 나라도 드물어서, 가벼운 감기 증상으로 클리닉을 찾는다고 할 때 약까지 받으면 한 번에 비용이 3만 원~5만 원 정도 나온다.
한 번은 걷기도 힘들 정도로 아파서 클리닉에 갔다. 열이 39.1도였고, 코로나 검사는 음성이었다. 너무 심하게 아파서 의사한테 독감검사를 해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이전에도 독감이 걸린 적이 있었는데 이와 비슷하게 아팠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의사가 여기서 독감으로 결과가 나와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정확하게는 지금 감기증상에 대한 처치와 동일한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독감이면 전염성이 있는 게 아니냐고 했다. 그랬더니 마스크를 끼라고. 내가 당장 다음날 비행을 가서 300여 명의 승객들을 만나 독감을 옮길 수도 있을 텐데 황당했다. 나는 자체적으로 병가를 5일 끊어서 집에 왔다. 아프다고 일주일씩 맘 편하게 쉴 수 있는 형편이었으면, 과로가 축적되어 이렇게 아프지도 않았겠지. 그 와중에 회사에 팀리더는 내가 사용한 병가에 대해서 걱정을 빙자한 압박을 계속 주었다. 이때 크게 싱가포르에서 승무원생활에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승무원 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이, 건강상의 어려움을 겪었다.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고, 모두가 저마다 겪고 있는 어려움이었다. 승무원 생활이 2년 차 정도가 되니, 나의 건강을 갈아가며 일을 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오랜 꿈에 대한 책임감과 승무원일에 대한 열정으로 2년을 버텼다. 그 시간 동안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고, 오늘도 전 세계 어딘가에서 땀 흘려 일하고 있을 나의 동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