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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Dec 23. 2024

'나는 충분하지 않아.' 다이어트, 섭식장애, 폭식증

대학생 때 한 3년 정도 섭식장애를 겪었다. 음식을 과도하게 먹고 일부러 게워내는 폭식증이었다. 그때는 정말 어쩔 줄을 몰랐다. 괜찮은 체형이었음에도 원하는 체형이 되고 싶어서 모든 에너지를 쏟았고, 예정된 결말처럼 섭식장애라는 역풍을 맞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어느 날 갑자기 식사량을 줄이고 과도하게 운동한다는 건 내 신체에는 굉장히 급진적인 변화인데, 아무런 요령 없이 더 더 열심히만 했으니까. 어려서 그나마 버틸만했던 것 같다. 어찌 됐건 내가 내 몸에 했던 가해는 없던 일이 될 수 없어서 원래도 약했던 목이 고질적으로 약해졌다.



거식증을 다룬 영화 투더본_넷플릭스

다이어트를 할 때는 굉장히 근시안이 된다. 소수에 성공사례에 집중해서 나도 금방이고 한 달에 5kg를 뺄 수 있을 것 같다. 대다수가 감량에 실패하거나 유지에 실패한다는 진실은 보고 싶지 않았던 건지, 정말 못 봤던 건지 모르겠다. 그저 살을 빼고 싶었고, 빼야 했다.



그 과정이 굉장히 정신적, 신체적으로 해로웠던 것 같다.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사람은 대부분 초반 반짝 성공했다가 이내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20대 초반 싱그럽게 움트는 시기에 반복해서 실패하는 경험을 한다는 건 굉장히 나를 위축시켰다. 다이어트를 계속한다 것은 늘 나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았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도 점점 악화되는 상황은 나를 의기소침하게 했다.



최근에 인사이드 아웃 2를 뒤늦게 봤다. 사춘기 라일리의 마음에 '나는 충분하지 않아.'라는 신념이 자리 잡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 섭식장애를 겪을 당시 내 마음 기저에 자리 잡은 중심 된 생각도 나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서 성인이 된 나를 내가 다시 양육하는 마음으로, 너는 원하는 것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끈기 있는 사람이야, 너는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용감한 사람이야와 같이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갔고, 나의 마음과 생각을 자주 들여다보려고 노력했고, 그에 맞게 살려고 노력했다. 여전히 나는 때로 우울하고, 꽤 자주 불안하다. 하지만 10년 전 깜깜한 어둠 속에서 힘들어하던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현재 꽤 단단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누군가 섭식장애를 겪고 있다면 음식의 문제에 가려진 깊은 마음의 고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을 좀 들여봐 달라는 간절한 호소일지 모른다.



만약 그때 갓 성인이 된 벌벌 떨고 있던 나를 만나 얘기해 줄 수 있다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는 사춘기 열병처럼 마음의 고통을 풀어냄에 따라 자연스럽게 떠나갈 거라고. 그저 평범해도 괜찮다고. 길에서 만나는 어린아이가 존재만으로 빛나고 충분하듯 너도 존재만으로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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