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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안 Dec 26. 2024

무레요코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잔잔하고 무해한 일본소설, 일본드라마 추천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스틸컷

고바야시 사토미 주연의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일본 드라마 중에 하나이다. 무레요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4부작의 짤막한 드라마이다. 이 작품을 포함하여 무레요코의 글 그리고 고바야시 사토미가 출연하는 작품은 대부분 잔잔하다.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취향이 아닌 사람은 지루하다 하고, 취향인 사람은 그 평온한 분위기를 애정한다. 나는 당연히 후자이고. 뭐랄까 동네에 분위기가 나와 딱 맞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카페를 방문하듯 어느 순간부터 어딘가에 고바야시 사토미의 얼굴만 스치면 눌러보게 되는 것이다.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셋_책

이 작품은 소설과 드라마 둘 다 좋다. 대부분 원작을 이길 수 있는 후속작은 많이 없지만 이 작품은 드라마는 드라마 대로의 매력의 충분하다. 또 잔잔한 계열의 일본드라마 중에서도 특히 잔잔하다. 그렇지만 볼 때마다 흥미 있고 단정하고 흐뭇하다. 그런데 올해 3월 이 작품의 원작소설 3권이 출시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되고 얼마나 설렜던지. 3권을 신성하게 맞이하기 위해 그전에 1,2권을 다시 읽고 있다.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_배우 고바야시 사토미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주인공 아키코는 중년의 싱글여성으로 혼자 거주하며 작은 식당을 운영한다. 드라마에서는 아키코에 대한 설명을 더욱 간추렸다. 시시콜콜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던 그녀는 경리부로 인사이동을 권고받고 사직을 결정한다. 홀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운영하던 수더분한 동네식당을 자신의 스타일로 바꾸어 샌드위치를 기본으로 하는 간소하고 정갈한 음식점으로 운영하기 시작한다. 운동부 출신 아르바이트생 시마씨, 동네 찻집 주인동네 아저씨들, 아키코의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_배우 고바야시 사토미

※ 이제부터 스포일러 있어요.

아키코는 굉장히 유해 보이지만 강단 있는 인물이다. 책이 좋아 출판사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편집자다. 후배에게 일적인 조언을 해주고, 존경하는 선생님의 자서전 출판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중견사원이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열의가 있고, 후배를 이끌어주는 선임이다. 그런 그녀도 세월의 흐름은 피할 수 없어서 경리부로 인사이동을 권고받는다. 직급이 올라가는 조건으로 봐서는 그간 회사에서 그녀의 평가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사의를 표한다. 어떤 드라마도 없이 담담하고 품위 있게. 근무 마지막 날 박스에 그간의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헛헛한 마음에 동네 문구점에 들려 아이들이 하는 뽑기를 전부사서 하나씩 뜯어본다. 자신이 결정했음에도 오래도록 열정을 갖고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는 마음은 복잡하겠지. 그녀는 시종일관 조용하고 부드러운 인물로 그려지지만 그녀의 행보는 굉장히 대담하다. 평생 다니던 직장을 단번에 그만두는 결단과 평생 요식업과 관련 없던 사람이 음식점을 하겠다고 마음먹는 것. 자신이 사랑하는 편집 일을 잠시 접어두고 요리라는 또 다른 열의를 새롭게 불 지피는 일까지. 그런 그녀를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녀의 행보에 집중하게 된다.



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_배우 카나

또 한 명의 매력적인 인물 음식점의 아르바이트생 시마씨. 배우 카나가 연기한다. 책에서 그려본 시마씨 그 자체의 모습이라 너무 좋았는데 요즘 활동이 뜸한 것 같아서 아쉽다. 한국의 배우 김수현 씨를 닮았다고 생각하며 봤다. 그녀는 주인공 아키코만큼 존재감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시마씨는 전직 운동선수 출신으로 일부러 직장을 구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이다.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벌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젊은이다. 시마씨 또한 일반적인 사회 통념상 권고되는 가치관을 추구하는 인물이 아니고 특히 성공하고 싶어 하는 요즘의 젊은이들과 분위기를 달리한다. 이런 시마씨에게도 그다지 구구절절한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개인도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러한 사고방식이 꼭 어떤 극적인 사건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시마씨의 선택과 그녀의 진중하고 예의 있는 태도가 대비되어, 그녀가 선택한 삶의 방식으로 인해 그녀가 가벼운 사람으로 평가받지 않도록 한다.



영화 카모메 식당 스틸컷

무레요코의 작품의 인물들은 주로 이렇게 일반적인 트랙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인물들을 그린다. 핀란드에서 일본식당을 운영하는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가 그렇고, 조기은퇴 후 저금을 깨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세평의 행복 연꽃빌라'의 교코가 그렇다. 물론 그녀의 작품을 읽고 나도 일을 그만두고 저금을 깨서 단칸방에서 살아가야지 라거나 핀란드에서 한국식당을 차려봐야지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저 그런 트랙에서 벗어난 삶을 그것 그대로 소설에서 나마 인정해 주는 것에서, 나름대로 주변인물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낀달까. 이러한 작품을 쓰는 무레요코가 일본에서 아주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것을 보면 일본에서도 규격화된 삶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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