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hias and Maxime'을 보고
간만에 마음에 와 닿는 영화를 봤다.
내가 봤던 자비에 돌란의 영화 중에 제일 좋았다.
힘이 많이 빠졌고 더 섬세해졌고 돌란 특유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이야기 방식이 전작들 보다 이해하기 쉬워졌다.
감독 자신의 자화상 같은 이야기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진정성이 느껴진다라고 할까.
서로의 시선들에서 오가는 섬세한 감정선을 보는 것이 감상포인트. 처음 볼때는 잘 몰랐고 두 번째 세 번째 보고서야 ‘아하~’ 했다.
또 역시나 돌란의 감각으로 풀어낸 아름다운 장면 장면들과 음악들.
좋다.
줄거리는 심플하다.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오던 마티아스(=맷)와 막심은 어쩌다 친구 동생의 영화에 남자 둘이 딥키스하는 장면으로 출연하게 된다. 그 장면을 찍고 나서 맷의 혼란스러운 감정선을 따라가는 이야기와 12일 후 출국을 앞둔 막심의 이야기, 그리고 그 둘을 둘러싼 친구들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배경처럼 깔린다.
맷은 동성애라는 사회적으로 허락되지 않는 사랑을 우정이라는 이름이로 덮으며 회피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는 오랜 시간 사랑과 우정을 오가며 막심을 좋아했다는 몇 가지 단서를 둔다. 키스 장면을 찍으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직면하면서 길을 잃었다가 다시 찾아간다. 어디로 도달했는지에 대해서는 열린 결말. 우정일 수도 사랑일 수도 어느 쪽일 수도 있다는 결말. 또 둘 다 일수도 있으니.
’ 10초나 귀에 대고 속삭였잖아’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사랑에 대비되는 질투라는 지옥 같은 감정을 느낀 맷이 이성을 잃어버리며 막말 퍼레이드에 폭력까지 쓰게 되는 자신을 보며 역설적이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완전히 항복하게 된다고 나는 해석했다. 근데 여기서 대사를 수정하고 싶었다. ‘3초나 귀에 대고 속삭였잖아’ 사랑한다면 3초도 길다. 그리고 역시 사랑과 질투는 한 묶음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강력하고도 달콤한 감정이기도 하지만 반면 지옥 같은 고통이기도 하니까. 질투는 버려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깔려있어서 죽음과 같은 무게를 지닌 감정이다. 그런 이유로 질투라는 감정을 잘 보면 인생의 여러 힌트들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의 맷처럼 사랑을 발견한다든가 아니면 내가 가야 할 길을 발견한다든가 하는 것으로.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맷과 달리 막심은 자기기만이나 편견이 없는 인물로 보인다. 감정 그대로를 느끼고 받아들이는 인물로 보였다. 사실 영화에서는 맷을 향한 감정보다는 막심의 상처에 대해 좀 더 세세하게 그린다. 막심은 얼굴에 빨간 눈물자국이 있다. 절대 지워지지 않는 탄생부터 부여된 막심의 원죄 같은 정체성이다. 사랑받아야 하는 사람인 엄마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 둘째 막심. 누구에게나 첫사랑 일수밖에 없는 엄마와의 사랑이 좌절된 막심은 그래서 사랑 앞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맷이 혼란스러운 중에도 막심은 맷의 그대로를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이며 '이해하고 싶어'를 힘없이 말하는 장면이 그 맥락이라고 본다.
돌란은 영화마다 모성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데 (엄마로서는^^) 불편한 지점들이 있다. 그리고 지나치게 엄마의 모성을 강조하는 나를 둘러싼 세계와 돌란이 사는 세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다. 역시 위 아 더 월드. 그리고 또 비슷한 상처에 대해서는 연민을 느낀다. 내가 더 복잡해서 돌란의 복잡함이 잘 읽히기도 한다. 엄마이기도 하고 또 사회적 모성 이미지의 피해자이기도 한 나의 상황이 함께 대입되면서 모르긴 몰라도 돌란보다 더 혼란스럽다. 암튼. 돌란의 영화는 내게 이런저런 생각거리를 준다.
그런 맷과 막심의 이야기와 함께 그의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장면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아름다운 밤 찐 절친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오가는 지들만 재밌는 수다를 옅보는 듯한 밤 테이블 장면이나 파티 장면들. 막심은 그런 친구들 덕분에 어려운 시절들을 잘 버텨왔을 것 같다. 그러면서.. 나의 그 시절들도 떠올랐고 내 안에 예쁘고 고맙게 놓여 있는 비슷한 이야기들도 간만에 꺼내 보았다.
영화 시작 전에 누구누구에게 바친다라고 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이 영화의 소재가 되었던 친구들이 아닐까 한다. 사랑과 우정을 오가며 서로 기대고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친구들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이 이 영화의 전반에 배경처럼 예쁘게 깔려 있다.
그래서 나에겐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왔던 영화.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