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 친절이 아직 부담스러운 여행자, 런던 2일 차

78일간의 혼자 유럽 여행, 영국 여행기

by 여행불가P

런던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날씨 말고 사람들 말이다.


낯선 도시에서 마주한 따스함

첫날 여행이 너무 쉽게 풀렸던 탓일까. 이틀차 아침, 호기롭게 지하철을 탑승한 나는 그제야 런던 지하철에서는 데이터가 잘 터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한국과 달리 유럽 대부분의 도시가 그랬다.)

내려야 할 역 이름도 모르고, 목적지 이름도 긴가민가 한 상황.

한국에서 온 길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노선표와 터지지 않는 폰을 번갈아 들여다보며 기억을 더듬으려 애를 썼다. 그런 내가 곤란해 보이는 티가 잔뜩 났는지 옆에서 말을 건다.


시민 : 혹시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하니?

나 : 저도 몰라요...

시민 : 응..?

나보다 더 당황한 표정의 그녀를 내가 달래줘야 할 것 같았다.


계획을 세우며 수십 번을 봤던 이름인데 갑자기 말하려니 목적지가 왜 그리도 생각이 안 나던지,,

일단 성당 먼저 외치고ㅋㅋㅋ 대충 밀레니엄교 어쩌고도 외치면서 런던 시민과 스무고개를 시작했다.


덕분에 오늘의 첫 목적지로 갈 수 있는 역에 무사히 하차할 수 있었다.


세인트 폴 대성당

첫 목적지는 세인트 폴 대성당이었다. 중세 시대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곳은 런던을 대표하는 성당으로 오랜 시간 시민들과 함께 호흡해 온 곳이다. 대화재 이후 재건축되어 여전히 아름다운 외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밀레니엄교를 지나 테이트 모던으로 향하는 길. 자꾸만 뒤돌아 보게 만드는 풍경


테이트 모던, 현대 미술은 어려워

테이트 모던은 원래 발전소였던 건물을 개조하여 2000년에 개관한 현대 미술관이다.

개인적으로 미술관보다는 박물관 취향인데 테이트 모던은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추상보다 구상을 선호하는 나지만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 보게 되는 작품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좋아지는 것 같다.


버로우 마켓에서의 소소한 즐거움들

버로우 마켓은 오래된 시장 중 하나로 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과일, 채소, 육류 등의 기본 식재료와 각종 향신료, 세계 각국의 음식들까지 판매 중인 곳.

상당히 큰 규모이지만 아기자기한 느낌이 강해서 구석구석 둘러봤다.

마켓을 구경하고 스페인식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으깬 감자를 바싹 구워 자른 뒤 초리조, 야채 등을 넣어 만든 맛없을 수 없는 음식이었으나

한 입 먹을 때마다 후드득 소리가 난다는 단점이 있다. 반은 그냥 먹고 반은 주워 먹어야 하는,,

걸음을 멈추게 한 색 조합이 예쁜 매장


동화 속 한 장면, 타워브릿지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타워브릿지의 모습. 너무 예뻐서 발을 동동거릴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런던의 랜드마크 중 가장 멋지게 느껴졌다.

오전은 우당탕탕 이었으니 오후는 숙소 앞 공원에서 평화를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


스스로 세상을 개척하는 K-장녀에게 런던의 친절함이 힘들 정도...

1. 런던아이 사진 찍고 있으니까 도로를 달리던 기사님께서 버스를 멈춰주심. 제발요ㅠㅠ 승객들 답답해해요ㅠㅠ

2. 스칠 뻔하기만 해도 쏘리를 외침. 부딪혀도 진짜 괜찮아요... 덕분에 스치기도 전에 쏘리를 외치는 설레발쟁이가 되어버림

3. 문을 너무 멀리서부터 잡아 주셔서 짧은 다리로 한참을 뛰어가야 함. 나도 이걸 어디서부터 잡고 있어야 하나 고민하는 중

4. 방향을 모르겠어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까 도와줄까 하는 분들. 저,, 길 찾기보다 영어가 더 어려워요..


투덜대는 것 같지만 사실 모든 순간이 감사했다. 그들도 바쁜 하루를 지나는 중일 텐데 길을 헤맬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 길을 알려주고, 먼 곳에서 온 동양인 여행자에게 미소와 함께 눈인사를 건네주는 사람들. 덕분에 런던은 이미 낯선 도시가 아닌 듯했다. 그런데 이 친절을 마냥 반가워하기에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아직은 경계해야 할 이 도시에 너무 익숙해지면 안 될 것만 같다는 생각. 그러면서도 따스함에 사로잡힌 마음이 빠른 속도로 열리는 걸 막을 방법은 이미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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