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 유럽 여행의 시작, 런던 1일 차

78일간의 혼자 유럽 여행, 영국 여행기

by 여행불가P

유럽여행의 시작, 첫 도시 런던


런던은 '가보고 싶다'가 아니라,

'다들 가니까 한 번은 가봐야지'라는 생각으로 기대 없이 방문한 곳이었다.


사실 나에게는 신사의 나라라는 교양 있는 별칭보다 회색 도시, 차가운 도시의 느낌이 강했다. 아마 영국의 잔혹했던 역사들을 나도 모르게 민족성과 결부시켰거나, 기본적으로 배경이 어두운 아서 코난도일의 셜록홈즈,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들을 즐겨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편견을 갖고 시작했지만 여행 첫날이라는 설렘 때문인지 새벽 네시 반에 눈을 떴다. 시차 적응을 가볍게 떨친 여행자는 이른 시간부터 계획에 없던 길을 따라 산책을 시작했다.


기대 이상의 도시

런던답게 흐린 하늘 아래에서도 웅장하고 예쁜 빅벤. 잔뜩 흐린 뒷배경이 오히려 빅벤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매번 다른 하늘을 담는 런던아이 역시 어디서든 눈에 띈다. 이런 풍경들의 연속이라면 흐려도 좋아


한국에서 온 자격 없는 사진작가

빅벤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해맑은 중국인 여학생이 다가와 사진을 부탁했다. 여행자끼리의 품앗이는 흔한 일이다. 누군가의 사진 부탁은 늘 반갑게 여겨졌고, 예쁜 모습을 남겨주기 위한 사명감에 종종 무릎이 가벼운 사람이 되기도 했다.

숨은 포토존을 수소문해 찾아갔더니 갑자기 내 뒤로 줄을 서는 여행객들. 사실 한국에서는 똥손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런던에서는 인기 사진가가 되어버린 사람,, 한참 남을 찍어주기만 하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한 외국인 아주머니께서 본인이 찍어줄 테니 가서 서보라고 하셨다. 친절한 그녀는 이런 어정쩡한 구도의 사진을 열 장쯤 남겨주더니 인조이 유어 트립까지 외쳐주고 떠나갔다. 내 주변인들을 모두 웃게 한 사진이니 어쩌면 꽤 멋진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예상보다 추운 날씨에 길거리에서 후드티를 구매했다. "나 여행 왔어요"하는 티를 잔뜩 내고 싶어서 런던이라는 글자가 대문짝만 하게 박힌 걸 골랐다.

한껏 촌스러운 생존 필수품을 구매하자마자 하늘이 개기 시작했다.


다시 만난 빅벤, 내셔널 갤러리

파란 하늘 아래의 빅벤도 보고 싶은 초짜 여행자는 냅다 뛰기 시작. 역시 하늘은 파래야 제맛이다.

복작거리는 버킹엄 궁전을 지나, 트라팔가 광장 뒤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로 향했다. 예술에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지만, 대단한 작품들을 눈에 담고 왔다. 그리고 이 미술관 내에는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다수 있었다. 전시된 작품들도 당연히 좋았지만,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좋았다.

길거리 예술가들의 향연


공원에서 한 끼, 그들의 일상

이들의 일상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세인트 제임스 파크호에 당도했다. 런던 곳곳에 위치한 공원에는 늘 사람이 가득했다. 명수로 따지면 이곳은 분명 복잡하게 느껴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여유로움을 지닌 공간이었다.

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 아래에서 회사원들이 간단한 샌드위치와 컵파스타를 즐기고, 어린이들이 해맑게 뛰어다니며, 너 나 할 것 없이 눕고 엎드려서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저 아무 일 없이 이 분위기를 즐기기도 한다.

나도 이들을 따라 간단한 식사를 사서 여유에 같이 감돌아 보려 했지만 다음 행선지가 자꾸 머리에 떠오르는 걸 보니 아직은, 여전히 멀었다 싶은 이틀차 여행자.


거리에 생기를 채우는 붉은색

거리 곳곳에서 붉은색이 눈에 띄었다. 빨간 버스, 빨간 공중전화, 빨간 튜브. 런던을 상징하는 빨간 무언가를 볼 때마다 내적 반가움을 느끼며 셔터를 연신 눌러대던 기억이 난다.


도적떼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못하고 스트랩까지 연결한 폰을 손에 꼭 쥔 채로 시작한 하루였는데 이 멋진 도시에 그새 깊게 빠져버린 줏대 없는 자가 되어버린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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