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혼자 떠난 78일간의 유럽 여행기
엄마! 저 저기 갈래요!!
어린 시절, TV에 눈을 고정한 채 부모님께 실제로 외쳤던 말이다.
그 또래 아이들이 즐겨보던 컬러풀한 애니메이션이 아닌, 광활한 자연의 색감에 빠져 있던 꼬마.
작은 방 안의 작은 텔레비전, 그리고 그보다 더 작던 아이에게 영상 속 세상은 현실감이 없었다.
어딘지도 모르는,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도시. 하지만 어린 마음도 뛰게 하는 그런 장소였던 건 분명하다.
어렴풋한 잔상에 남아 있는 것은 꽃이 흐드러진 지중해의 어느 풍경 정도다.
“그래, 나중에 커서 가~”
엄마의 상투적인 대답에도 나는 진짜 꿈을 꿨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께 “쌤, 외국 가려면 얼마 있어야 해요? 세계 여행하려면 얼마 있어야 해요?”라는 질문을 하며 곤란하게 만들더니 “천만원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대답을 기어코 받아냈다.
천만원으로 세계 여행이 가능할 거라 굳게 믿었던 어린아이는, 어느새 집-회사-집을 반복하는 현실과 완벽하게 타협한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모두가 반대했던 전공을 고집스레 선택해 졸업해 놓고, 결국 그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게 된 사람. 택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선택한 삶을 5년쯤 지속하다 보니, 결국 나에게도 삐걱대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렇게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겨졌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여행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또 기약이 없을 것 같아서 '혼자라도 떠나보자'라는 마음을 먹었다.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해외였으니 용기보다 패기에 가까웠다는 개인적인 생각..
"퇴사 후 혼자 유럽 여행'이라는 호기로운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 거창한 건 없었다.
‘엄청난 것을 느끼고 와서 더 대단한 내가 되어야지’ 같은 다짐이나 기대 같은 거 없이,
그저 여행이 하고 싶어서 떠난 여행. 많은 것을 경험하고, 쉬어도 보고, 예쁜 풍경을 오감으로 담아보고,
사진도 가득 찍고, 그냥 세계여행이 꿈이라 떠난 길.
그렇게 마주하게 된 유럽은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다채로운 색감의 골목, 풍부한 문화와 역사들을 간직한 채 먼 곳에서 온 여행자에게 매일매일 새로운 매력을 선사했다. 오래전 화면 속에서 반짝이던 세상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물론 아름다운 것만 걸러서 보여줬던 화면과 달리 예상치 못한 문제들을 마주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경험이 큰 시야를 가져다준다는 것은 사실이다.
나의 경우 신기하게도 문제가 생길 때보다 여유로운 순간에서 배운 게 더 많았다.
뚜벅이가 만난 78일간의 유럽. 걷고 또 걸었지만 단 하루도 지치지 않았던 나날들.
후회 없는 시간들이었지만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여행을 꽤 오래 하면 갈증이 해갈될 줄 알았는데
다음을 더 갈망하게 되는 후유증이 남은 사람,,
유럽 여행. 어쩌면 이제 조금 흔해진 주제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설렘과 기대를 안겨주는 주제인 것은 확실하다.
영국-프랑스-이탈리아-그리스-튀르키예-헝가리-스위스-다시 이탈리아,
모두가 좋아하는 흔한 도시와, 모두가 좋아할 흔하지 않은 동네까지.
길게 이어질 내 일기가 누군가에게는 지난 여행을 추억하게 하는,
또 누군가에게는 앞으로의 여행을 꿈꾸게 하는 그런 글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