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SD와 PTG

일곱 번째 추적관찰

by 아피탄트

* 이번 달엔 완전관해 판정 후 일곱 번째 추적관찰이 있었어요.


2026년 3월 30일(월)


벌써 완전관해를 받은지 만 2년 째가 되는, 일곱번째 추적관찰이다.

또 다시 교수님을 따라 병원을 옮기게 되어서 이번 달에 총 세 번 병원을 방문했다.

전원 후 초진을 위해 한 번, CT촬영을 위해 한 번, 그리고 오늘 결과를 들으러 한 번.


병원은 달라졌지만, 암병동의 분위기는 어느 곳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참 서글프게도, 이 곳에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또 불과 몇 미터 옆엔, 환한 미소로 웃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여전히 진료 대기실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었다.

같은 병으로 같은 치료를 받는데도 이렇게 희비가 교차할 수 있음에 여전히 마음이 무겁고, 또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런 잡념 속에서 이윽고 내 이름이 불렸고, 나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벌써 일곱 번째, 이번에도 결과가 좋다는 교수님의 그 말씀은 월요일 아침의 험난한 출근길을 헤쳐오느라 쌓인 피로를 보상하기에 충분했다.



PTSD와 PTG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줄임말인 PTSD, 일상에서 아주 흔히 쓰이는 단어이다.

내게 이 네 글자짜리 단어는 암에 걸리기 전과 후로 완전히 무게감이 다른 단어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전에 내가 이 단어를 너무 가볍게 쓰진 않았나, 그렇게 가볍게 사용하다 정말 PTSD를 겪는 이들을 희화화한 적은 없었나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그만큼 내가 더 나의 아픔에 몰입을 하게 됐나보다.


요즘도 가끔 꿈을 꾼다.

어느 날엔 병원의 진료실에서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깨고, 또 어느 날엔 항암주사를 맞기 위해 혈관에 주사바늘을 찌를 때 깬다.

이젠 크게 걱정하지도 않고 대체로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음에도 그런 날들이 가끔 있다.

동시에 이따금씩 찾아오는 이런 불안함과 트라우마는 오롯이 나만의 힘으로 견뎌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나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가려 애써주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탓이 전혀 아님에도 알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연락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던 친구들도 있었고,

얼마전엔 엄마가 내가 치료받던 병원 근처를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다녀와선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병원이 이렇게 가까운줄 알았으면 내가 출근길에 태워다줘도 되는 거였는데 그걸 잘 몰랐다. 그게 참 미안하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속으로만 대답했다.

"아니에요. 나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수 있어서 오히려 혼자가 더 편했어요."


다들 그렇게 내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짐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이나마 들어주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PTG(Post Traumatic Growth)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다.

'외상 후 성장'이라는 단어인데, 사전적인 의미는 '외상을 겪은 후 단순히 이전 상태로 회복하는 것을 넘어, 인지적 재해석과 의도적 반추를 통해 심리적, 관계적, 가치관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형과 성장을 경험하는 심리학적 현상'이라 한다.


접하자마자 딱 나를 표현하는 단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 생각해봐도 한창 힘들어할 때와는 많이 달라졌거든,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 때는 내 얘기를 꺼내는 걸 극도로 아꼈다.

좋은 얘기도 아닌 일로 분위기에 찬물만 끼얹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내가 또 그런 침울한 기운을 옮기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자꾸 검열했다.


요즘엔 이전보다 내 자신에게 더 솔직해진 거 같다.

나에겐 '외상'에 해당하는 '암'을 더 당당하게 마주하게 되기도 했고, 내 투병 이력이 어떤 분야에서건 약점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됐고, 그보다 더 큰 강점들을 내세워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게 됐다.

미래의 위협이 과소평가 되는 것과는 반대로 현재의 리스크는 과대평가 되기 마련이니, 나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면 될 테지.


약점은 드러내지 않고 꼭꼭 숨겨두려 할 때 외려 더 약해지는 게 아닐까.

이젠 들켜도 불안해하지 않을 만큼의 용기가 생겨서, 애써 감출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조금씩 더 빨리 아물어 갈 것도 같다.


- 다음 예약은 6개월 뒤, 가벼운 마음으로 진료실을 나오며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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