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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스텔지어(향수)

영화이야기

by 명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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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를 봤다. 언제 처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향수를 봤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이십 대 초반에 학교 과제를 위해 봤고, 다시 본 건 그러니까 순전히 내 의지로, 이십 대 말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일들로 조금은 복잡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주변에 영화인들이 많았다. 그때는 홍상수를 좋아할 때니까, 물론 지금도 좋아하지만 잘 보지는 않는다. 그때 [향수]와 [희생]을 봤는데... 졸다 보다가 졸다 보다가 그랬던 것 같다.


[향수]가 내 소설에서 중요해서, 다시 찾아서 봤다. 그동안 영어 자막으로 봐서 잘 봤는지 기억에 없었는데, 이번에 한국어 자막으로 봤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그동안 이야기에 단련돼서 일까. 너무 좋았다. 좋았다는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무수한 상징과 이미지, 각각의 대사가 의미하는 바가 너무 커서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명작은 어쩔 수 없이 명작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방문


안개가 부연, 길에 자동차 한 대가 나타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유제니아가 차에서 내려 안드레이에게 그곳이 아름답다며 러시아의 공원을 떠올리게 한다며 앞장서 걷는다. 그는 가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공원을 향해 발걸음을 뗀다. 뭔가, 피로한 듯한 안드레이는 차에 내려 잠시 차에 기대어 유제니아 나가 걸어간 방향을 바라본다. 안개 낀 초원, 화면이지만 물기가 가득해 얼굴에 붙을 것 같은 축축함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도 혼자 보면 다 무슨 소용이야. 다 싫어." 안드레이가 중얼거린다. 혼자라니. 그는 그녀와 함께 있는데, 그는 내내 그녀의 존재를 무시한다. 이 첫 장면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홀로 선 나무, 안개, 물, 젖은 땅, 매력적인 여자와 무심한 남자.


출산의 성모를 보러 로마에서 한참은 떨어진 토스카나 근처 산 마르티노로 자동차를 타고 왔지만, 막상 안드레이는 성당 안에는 들어가지도 않는다. 혼자 성당 안으로 들어간 유제이나에게 도미니코가 묻는다.

"아이를 갖고 싶은가요?"

그는 그녀에게 원하는 것을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라고 하고 그녀는 시도하려다가 못하겠다고 일어난다. 출산의 성모 앞에서 아이를 달라고 기도하는 여성과 성모의 가슴을 열자 날아오르는 수많은 새들, 깃털들이 흩날려 촛불 위로 떨어지고 이내 장면은 홀로 남은 안드레이에게로 넘어간다. 이내 바닥에서 깃털을 주워 든 안드레이, 고개를 돌리면 나무집과 그 앞에 천사가 서 있다. 흑백 배경에 새하얀 천사의 날개, 그곳에서 떨어진 듯한 깃털 하나. 이 장면은 그의 러시아 집과 지금 그가 선 곳이 마치 하나의 장면처럼 연결된 듯한 느낌을 준다.


안드레이는 18세기 노예출신의 러시아 작곡가 파벨 소스노프스키의 생애를 연구하러 왔지만, 무슨 일인지 지역에 미치광이 광신도로 알려진 도미니코를 인터뷰한다. 도미니코는 세상에 종말이 올 거라며 가족을 집에 7년 간 감금한 인물이다.


파벨 소스노프 스키는 러시아로 돌아가지만, 결국에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자살한다. 여기서, 향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안드레이의 향수와 타르코프스키의 향수는 고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엔 도미니코와 가정부의 향수도 포함된다. 향수란 욕망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결국엔 어떻게 해도 채울 수 없는 욕망, 세상에 없는 어떤 곳, 너무 그리워해 그 대상이 사라진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천사가 시궁창에 남긴 흰 깃털처럼.




영화의 처음은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출산과는 거리가 먼, 유제니아는 욕망을 원하지 아이를 바라는 여인은 아니다. 유제니아 나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지 못하고 안드레이를 홀로 남겨두고 떠난다. 떠나면서 그녀는 그의 비겁함을 비난한다. 남은 안드레이는 도니미크를 만나 혼자 인터뷰를 이어간다. 도미니코는 조금 남은 초를 안드레이에게 주며 촛불을 들고 물(온천)을 걸어달라고 부탁한다. 유제니아는 다른 남자를 만나 떠난다. 안드레이의 건강은 점점 악화된다. 그는 도미니코의 부탁을 들어주려 짧은 초에 불을 밝혀 온천 위를 걷는다. 초는 자꾸 꺼지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초에 불을 밝히고 온천물 위를 걷고 다시 걷는다. 그리고 도미니코는 화합하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분신한다. 이 부분은 너무 직접적(당시 냉전시대를 겨냥한)이지만 영화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 초반에 유제니아는 피렌체의 한 가정부에 대해 안드레이에게 말한다. 그녀가 자신이 일하는 집에 향수 때문에 불을 질렀다고. 이 부분은 도미니끄의 분신과 연결된다. 유제이나의 사랑을 거부한 후에 안드레이는 동굴 같은 곳에서 시집을 태운다. 그곳에서의 불, 도미니끄가 가족을 7년간 감금한 집 또한 불에 탔다. 무언가를 태우고 재로 만드는 불, 모든 것을 태우지 않고는 달랠 수 없는 향수, 끝없이 끓어오르는 유황 온천, 그 길을 꺼질 듯 흔드리는 불을 들고 건너는 안드레이. 영화는 내내 불과 물, 물과 불에 대해 말한다. 때론 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지만, 또 자신을 희생에 어둠을 밝히는 초처럼, 불은 구원이다. 도미니크의 분신은 결국 구원으로 이어지니까.


영화에서 안드레이는 영원한 사랑은 결국 육체관계를 하지 않는 거라는 말을 한다. 그건 유제니아를 향한 그의 마음을 되비치는 듯하다. 건강한 육체 대신 그는 허상을 쫓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성전인듯한 곳에 물웅덩이, 그 앞에 안드레이와 셰퍼트가 앉아있다. 물울덩이에 비치는 두 개의 문은 마치 현실과 환상의 문처럼 보인다. 이토록 많은 상징과 은유, 환유가 섞인 영화를 근래에는 찾기 어렵다. 그게 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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