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설
이 소설은 전에도 말했듯이 인스타 광고를 보고 질러버렸다. 그러니 정보라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다. 전에 『저주토끼』광고를 본 적이 있다. 그 책을 사볼까 하고 미리 보기로 읽었는데, 내겐 문장이 너무 거칠어 포기했었다. 그 소설이 정보라 작가의 소설이라는 걸, 그게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는 걸 『아이들의 집』을 다 읽고 알게 됐다.
어제 책을 다 읽고 정보라 작가가 누군지 궁금해 찾아봤다. 그녀가 번역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과 그중에 폴란드어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래전에 『브라츠와프의 쥐들』이 한국어로 번역돼서 흥미 있게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 번역가가 정보라 작가였다. 이 작가 가는 영어, 러시아어, 폴란드어를 한다고 한다. 러시아어와 폴란드어는 비슷하면서 아주 다른데, 참 대단하다.
『아이들의 집』의 처음은 무척 흥미로웠다. 어둡고 음산한 집 안에 죽은 아이가 팔다리가 잘린 인형 사이에 있다. 여자는 아이가 다시 깨어날 거라고 믿으며 물을 준다. 이 아이가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부분은 굉장히 강렬해서 빨리 다음을 읽고 싶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들의 집 풍경, 아이들의 백신을 맞으러 가고 로봇이 아이들을 돌본다. 이 로봇은 깡통이라 불리며 동시에 앨리스라 불린다. 그리고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은 무정형(주인물), 가루와 삼각형, 정사각형(가루의 엄마), 색종이, 섬, 표, 관 이런 이름으로 인물을 지칭한다. 이 소설은 국가가 아이들의 집을 통해 공동육아 하는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결은 두 갈래다. 하나는 집 안에 섬의 시선(이건 보조)과 무정형의 시선이다. 무정형의 직업은 정부에서 사람들에게 집을 빌려주는데, 사람들이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집의 상태를 조사하는 직업이다. 아이의 사체가 발견된 그 집도 여자와 아이가 들어가기 전 무정형이 조사했고 또 나간 후에도 조사해야 하는 집이다. 무정형은 그 안에서 귀신을 본다. 죽은 아이의 사정을 따라가며 무정형의 아픔도 나온다.
동시에 이 이야기는 표와 관에 대해서도 말한다. 행복한 양모에게 입양된 표와 폭력적인 부모에게 입양돼 시민권도 없어 제대로 된 직업도 가질 수 없는 관. 관은 부모를 찾으러 자신이 입양된 나라로 가고 거기서 자신의 입양과 관련된 진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표의 출생과 입양에 관한 진실도 드러난다. 여기서 동성애에 가해지는 제도의 폭력도 언급된다.
동시에 부모 없이 과학기술로 태어난 아이가 등장하고 이 아이를 둘러싼 종교 단체와 다른 단체의 이권 싸움도 드러난다. 그리고 여기에 얽힌 수많은 거짓과 어리석음. 또한 인공 기계와 인간, 데이터로 활용되는 인간의 경험치 같은, 시의성 있는 이야기를 작가는 하고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는 알게 된다. 이 이야기들이 너무 익숙하다는 걸. 미래처럼, 사실 이 설정을 내가 제대로 읽은 건지 모르겠다- 설정한 배경이 굳이 이 소설에 필요했을까 같은 생각을 할 만큼, 세계는 마치 7,80년대 한국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미래라고 믿기 힘든 직업군이 등장한다. 건물 관리인 같은...
다 읽은 후, 작가의 말을 읽고 왜 이 소설이 그토록 익숙한지를 이해하게 됐다. 그럼에도 소설 속 많은 장치들은 그 세계가 작가에게도 완전히 익숙한 건 아닌 것처럼 느껴져 아쉬웠다. 이 소설의 주제를 작가는 소설 안에서 아주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부모가 없어도, 부모가 다쳐도, 부모가 아파도, 부모가 가난해도, 부모가 신뢰할 수 없는 인격을 가졌거나 범죄자라도, 아이들은 그런 부모와 아무 상관없이 자라날 수 있었다. 아이의 삶은 아이의 것이었다. 혈연이 있는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고 행운이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슬픈 일이지만, 가족의 불운이 아이의 인생 전체를 지배할 필요는 없었다. 돌봄을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모든 아이가 가진 고유의 권리였다.-
나는 이 소설을 기쁘게 읽지 않았다. 좋아하는 소설을 읽을 때처럼 흥분하지도 않았다. 일단 문체가 내 취향이 아니다. 거칠다. 서술어의 늘림이 내내 불편했다. 그럼에도 읽고 나니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이다. 불편하고 힘든 이야기를 작가는 전면에 내놓고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국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뭘 할 수 있나? 적어도 아이들이 잘 자라는 사회, 저출산에서 노출산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이 여전히 아이 수출국 1위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파오간호사 취재를 할 때, 어떤 분이 비행기에 아기들도 타고 있었다고 했다. 그 아이들이 입양 가는 아이들이었다고. 또한 내 주변에도 한국이나 중국에서 입양돼, 네덜란드 가족에게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 내 눈에 그 아이들은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지만, 자세한 속내를 알 수는 없으니까.
정보라의 『아이들의 집』은 미래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리가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과거의 이야기다. 그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 “국가는, 사회는,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집을 만들어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