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2-07-12 | 발행일 2022-07-12 제15면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현실"이라고 말했다. 피카소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개인의 주관에 따라 다양한 입체적인 형태로 보이는 큐비즘(cubism)을 통해 현대미술의 영역을 개척하며 상상력의 중요성을 가장 잘 증명해 보였던 작가다.
상상력은 비단 작가에게만이 아니라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에게도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하나의 전시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도 '상상'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를 통상 '기획'이라 말하지만 필자는 구체적인 기획 이전에 자유로운 사고가 마음껏 생동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사고와 다채로운 상상력은 전시기획의 그릇을 크게 만들고 뚜렷한 개성과 기발함은 멋진 재료가 된다.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에는 방대한 경험과 리서치가 필요하다. 매번 새로운 전시를 연구하고 진행하는 일은 상상의 한계를 마주하지 않기 위해 세상의 별의별 것에 대한 관심과 공부로 발버둥을 치게 한다. 전시의 특성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 혼자 재미있는 상상은 금세 생명력을 잃는다. 그래서 미술관의 관리동 안에서 일어나는 핵심적인 일들 중 하나로 '기획 회의'가 존재한다. 분기별로 열리는 이 회의에서 학예연구사들은 발의를 통해 전시기획을 제안하면 학예연구실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논의한다. 이후 심화된 내용을 재발의하며 기획 역량을 강화하고 크게는 미술관의 안정적이고 밀도 있는 전시체계를 만들어 나간다.
그렇다면 좋은 전시를 기획하기 위해 해야 할 상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우선 상상력의 힘은 세상과 인간 감정에 관심을 가지고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노력에서부터 발휘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관심과 이해 그리고 공감을 통해서만 완벽한 동일시가 이루어져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그려볼 수 있다.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또한 모두의 취향을 저격할 수는 없어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야 하는 점은 필수적이다. 무엇이 좋은 전시인가를 논하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태도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각들을 수용할 수 있는 전시를 상상한다면 적어도 그 출발은 성공적이지 않을까. 그러한 전시를 보는 많은 사람들도 자유롭게 생각하고 함께 이해하며 새로운 것을 상상할 수 있다면 더욱이 의미 있는 문화적 작동이 될 것이다. 상상으로 시작해 상상으로 끝나는 전시문화를 바라며.
이혜원〈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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