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물질 - 나희덕 시집 리뷰

by 책덕후 이소

이 시집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다양한 ‘비인간 존재’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며,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감각을 시로 풀어낸다. 자연을 단순히 아름답거나 이용 가능한 대상으로 규정하지 않고, 인간과 긴장 속에서 공존하는 존재로 인식하며 그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색한다. 이 사랑은 확신이나 낭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망설이며 다가가는 태도로 드러난다.


동시에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폭력에도 시선을 돌린다. 노동, 죽음, 정치적 사건 등 현실의 장면들을 통해 인간 중심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균열을 드러내고, 그 속에서 시와 시인의 역할을 되묻는다. 시는 더 이상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물질’로서, 변화와 연결을 만들어내는 힘으로 제시된다.


책 속 문장

아가, 뛰지 마라, 절대 뛰어서는 안 된다!


천천히, 천천히 걸어야 한다!



그 외침을 방패 삼아 걷고 있는 소년 앞으로


한 청년이 겁에 질려 뛰기 시작했다


문득 충성이 들렸고 청년은 쓰러졌다



숨죽여 걷는다는 일,


그것이 소년에게는 가장 어려운 싸움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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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및 감상

나희덕의 <시와 물질>을 읽으며 여러 시들이 좋았지만, 왜 이 시를 골라 적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전쟁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 이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 때문일까.


무슨 이유였건, 이 시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울컥 눈물이 나오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 시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총탄이 두렵지만 그 안에서도 아이를 안전하게 지키려는 어머니의 마음. 총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뛰어버린 청년. 그 청년보다 더 어린아이는 어떻게 그 두려움 속에서 뛰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까. 결국 절대 뛰면 안 된다고, 천천히 걸어야 한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힘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이를 튀어나가지 못하게 굳게 잡은 손이 단순히 아이의 손만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두려움까지 함께 움켜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두려워서 빠르게 뛰어나가는 걸음이 아닌, 폭력을 피해 숨죽여 걷는 걸음도 아닌, 평화의 걸음이란 도대체 어떻게 걸을 수 있는 걸까.


1950년에서 7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전쟁의 폭력을 피해 뛰어가는 걸음을 보고 있다. 아니, 이제는 총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무기의 폭발로 인해, 벗어나기 위한 뜀걸음조차 시도하지 못한 채 삶의 끝으로 향하는 걸음을 보게 된다.


얼마나 더 많은 무릎으로, 얼마나 더 오래 이 땅의 피먼지를 닦아내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 많은 양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는 걸까. 가끔은 전쟁을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나 또한 살인자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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