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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카의 정의와 구분

자동차 이야기

by 자칼 황욱익

레트로와 복고 같은 문화 코드가 주목을 받으면서 자동차 역시 예전 것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 소비의 주류로 자리 잡은 40대 이상 세대들이 과거 자신들의 향수가 깃든 물건을 다시 수집하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케이블 TV에서는 히스토리 채널의 전당포 사나이들(폰스타)이 온라인 기준 1억 뷰를 넘었고, 비슷한 테마를 가진 트레저 헌터가 3040 이상 세대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은 5~6년 전부터이다. 점점 단순해지고 첨단 기능이 모두 탑재된 물건(자율 주행이 가능해진 자동차, 생활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 등)이 등장하면서 예전에 봤던 혹은 경험했던 향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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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소비자의 특성상 옛것보다 최신 제품을 선호하는 층은 꾸준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자동차도 오래된 모델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클래식카 관련 카페나 커뮤니티가 늘어나고 오프라인 자동차 모임에서도 예전 모델에 대한 향수 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기형적인 한국의 자동차 시장의 식상한 흐름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상적인 의미의 클래식카를 찾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원형에 보존에 상관없이 무조건 오래된 차를(20년 정도만 넘으면) 가리켜 올드카 혹은 클래식카라고 부는 것도 최근의 추세다.


국제 시장에서 클래식카라고 불릴 수 있는 가장 최소 조건은 전자식 연료분사 시스템(인젝터)이 나오기 전인 1975년 생산분까지 보는 것이 세계적인 기준이다. 연대를 구분하는 기준인데 기화기 방식(카뷰레터)을 가진 차까지 통상 클래식 범위에 들어가고 이후 전자식 연료분사 시스템이 탑재된 차들은 아직 클래식이라고 부르기 애매하다. 통칭 클래식카는 1950년대부터 1975년까지 구분하고, 그전에 생산된 차는 생산 시기에 따라 빈티지, 프리 워, 포스트 워 등으로 구분한다. 단순히 오래됐다고 클래식카라고 부르지 않는다. 최소한 클래식카의 범주에 들어가려면 시대 상이나 자동차 메이커의 철학, 기술적 영향력, 희소가치 등등 더욱 까다롭다. 그래서 현재 클래식카로 인정받으려면 RM 소더비, 본 햄스 같은 클래식카 전문 경매 출품 자격을 갖춰야 한다. 전문 경매의 역할은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그 차의 가치와 시세를 인증하는 과정을 거친다. 고미술품 경매와 비슷한 시스템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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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독일의 기준은 조금 더 범위가 넓다. 국제 클래식카 기준과 달리 독일은 단종 25년을 기준으로 안쪽이면 영타이어, 그 이상이면 올드타이머라고 부른다. 보다 대중적인 모델들이 폭넓게 해당되며 매년 영타이머에서 올드타이머로 넘어가는 모델이 누적된다. 다만 이 역시도 지역적인 구분일 뿐 국제적인 기준은 아니며, 통용되는 공식적인 용어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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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국차 중에 국제 클래식카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모델은 포니의 초기 생산형이 유일하다. 포니 이전에도 조립 생산했던 차들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고(코티나 시리즈는 생산량이 많아 외국에서는 남아있는 개체가 많음) 독자 모델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포니는 대중적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모델이다.

예전에 포니의 국제 클래식카 인증을 위해 클래식카 랠리에 출전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주최 측에서 돌아온 답은 '미쓰비시 콜트가 원형이고 생산 시기가 애매하다'는 답을 들었다. 복잡하긴 하지만 한국의 상황과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이라는 점을 설명한 끝에 특별 출주 자격이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중간에 무산되었다. 다행히 작년 우리나라가 FIVA(밀레 밀리아를 주관하는 국제 클래식카 연맹)에 포니와 함께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국내 유일의 클래식카에 이름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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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우 국제 클래식카 시장에서의 인정이 아니더라도 오래된 내수형 차들의 거래가 매우 활발하고 시장도 탄탄하다. 남아 있는 개체수가 많아서 그렇긴 하지만 일본의 클래식카 시장은 유럽이나 미국 출신의 고가의 모델 외에도 내수형 모델이 탄탄하게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몇 년 전 시작된 BH 옥션은 자국 생산 모델의(내수 모델과 상용차) 가격 방어와 인지도 형성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올드카라는 용어 역시 일본에서 시작했다. 194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생산된 일본 내수형(JDM)을 지칭하는 용어인데 이 역시도 공식 명칭이나 국제적인 기준은 아니다. 일본은 오래된 시장인만큼 전통적인 의미의 클래식카와 일본 내수형 올드카 시장이 공존한다.


시대가 변하면 클래식카에 대한 기준도 변한다!

일본과 유럽, 미국의 클래식카 시장은 좀 더 세분화되어 있다. 반드시 1975년까지만 ‘클래식카’ 범주에 넣는 것이 아니라 1980년대와 1990년대 생산 모델까지도 넓은 의미의 클래식카에 포함되고 있다. 핫 로드를 포함한 전통 클래식카 분야가 보다 세분화되어 있는 미국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생산된 차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꾸준하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며 유럽 역시 ‘넘사벽 클래식카’ 시장만큼 20세기말에 생산된 차들의 가격이 꾸준하게 오르고 있다.

일본은 아예 ‘네오 클래식’이라는 자기들만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고가의 클래식카 시장만큼이나 활발하게 움직이는 중이다. 거품 경제가 극에 달하던 시절에 등장한 차들과 기술력을 경쟁하던 일본산 스포츠카들이 그 주역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생산된 차들이 그동안 인기가 없었던 요인에는 기계식에 비해 구조가 복잡하고 전자식이 혼합된 형태 때문이었다. 기계식에 향수를 가지고 있는 층에서 전자식과 혼합된 1980년대 이후의 차들은 기계적인 감성이 부족하다는 평가 때문이다. 그러나 자동차를 즐기는 연령이 비교적 폭 넓어지면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생산된 차들의 수요는 최근 2~3년 사이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른바 클래식카 시장의 연령대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클래식카 시장은 거의 전무하고 보는 편이 맞다. 신차 교환 주기가 짧고 폐차 비율이 높은 이유다. 1980년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1990년대에 생산된 차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적인 특성상 개체수가 적기도 하지만 막상 20년 이상 된 모델을 찾았다 해도 정체불명의 대체 부품으로 점철된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단종된 부품이 많아 어쩔 수 없이 다른 차의 부품을 이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런 차들이 마치 오리지널인양 대우받는 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필요에 의해서 이런 차들이 탄생하고 우리네 시장 구조가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여러 가지 아쉬운 부분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클래식카 분야가 제대로 대우를 받으려면 단순히 움직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형의 모습을 얼마나 간직하고 있느냐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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