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이야기
자동차와 레이스를 다루는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130만 이상의 관객을 모은 포드 앤 페라리는 1966년 이후의 스토리도 굉장히 흥미롭다. 영화가 개봉하면서 실제 사건과 영화에서 각색된 내용을 비교하는 게시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에 대한 관심, 심지어 셸비 코브라의 디자인에 참여했던 한국인 디자이너에 대한 얘기까지 비화들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우선 멧 데이먼이 연기한 캐롤 셸비는 알려진 대로 ‘셸비 아메리카’를 설립한 인물이다. 유럽 레이스 경험을 토대로 유럽 자동차 메이커의 가볍고 튼튼한 섀시에 강력한 성능의 미국 엔진을 올린 스포츠카를 판매하기 시작한 셸비는 이후 포드의 간판 스포츠카인 머스탱을 튜닝한 셸비 머스탱, 코브라 시리즈 등을 선보인다. 머스탱 기반의 대표적인 스포츠카 머스탱 GT350과 GT500의 리어 뷰 디자인, 셸비의 로고인 똬리를 틀고 있는 코브라의 리디자인은 북한 출신인 전명준(존 전)이 담당했다. 우연한 기회에 셸비 아메리카에 합류한 전명준 씨는 머스탱의 기본 디자인을 토대로 프런트와 사이드, 리어를 다듬어 셸비 GT 시리즈를 완성했는데 가장 유명한 차는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인 ‘식스티 세컨즈(2000년)’에 엘리노어라는 별명으로 등장하는 차이다.
셸비는 셸비 머스탱 이전에 코브라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경량 로드스터(섀시는 영국의 AC카즈에서 수입)의 엔진을 두고 쉐보레와 먼저 접촉을 시도했으나 같은 엔진을 사용해 레이스에서의 간섭을 우려한 쉐보레의 거절로 포드로부터 엔진을 공급받게 된다. 이때의 인연이 포드 GT를 개발에 참여하고 르망에 출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셸비가 포드하고만 협업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포드에는 SVT라는 스포츠카를 포함한 특수차 개발 부서가 생기면서 셸비와 관계는 좀 애매해진다. 이후 셸비는 닷지와 협업을 하는데 쿠퍼헤드 콘셉트카를 비롯해 닷지 바이퍼 개발에 참여한다. 다양한 사업에서 좋은 수완을 자랑했던 캐롤 셸비는 결혼을 7번이나 하기도 했다.
포드는 2002년에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포드 GT 이름을 계승한 미드십 스포츠카를 발표했다. 1960년대에 등장했던 GT와 유사한 디자인을 가진 이 차는 4,038대 생산됐으며, 국내에는 2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에는 2세대 GT가 등장했는데 포드 최초로 온라인을 통해 까다로운 판매 조건을 내세웠다. 2세대 GT는 2016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출전해 ‘LMGTE PRO(르망 그랜드 투어링 인듀어런스 프로)’ 클래스 1위, 3위를 기록하며 전설의 귀환을 알렸다.
캐롤 셸비의 단짝으로 등장하는 켄 마일즈(크리스천 베일)의 생애는 거의 알려진 게 없다. 괄괄하긴 했지만 사생활 노출을 극도로 꺼렸기에 공식 레이스 커리어만 그의 생애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켄 마일즈는 충실한 가장이자 아들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아버지로 알려지는데 영화 개봉 무렵 아들 피터 마일즈의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영화에서 켄 마일즈를 연기했던 크리스천 베일은 피터 마일즈에게 많은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뭉클한 부자 관계를 다루는 부분이 생각보다 많다. 레이스를 그만두려고 갖다 버린 트로피를 아들이 다시 가져와 침대 밑에 숨긴 다던지, 아버지의 트로피를 들고 잠든 채 귀가하는 모습, 경기가 열리는 르 샤르트 서킷 그림을 그린 아들에게 아버지가 설명하는 모습 등은 애틋한 부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경주차의 테스트가 끝난 후 ‘드라이브 가야지’ 하면서 아들을 경주차에 태우고 테스트 트랙을 도는 모습이다.
안타깝게도 켄 마일즈는 이듬해인 1967년 포드 GT Mk II의 후속작이었던 J 카 테스트 도중 사망한다. 논란이 많았던 1966년 르망에서의 사건은 아직도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영화에서처럼 포드 경영진의 무리한 오더는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당시 포드의 레이싱 책임자였던 레오 비비 역시 영화에서처럼 성과만을 위한 경영진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여러 자료에도 나와 있다.
재미있는 점은 캐롤 셸비가 포드 레이싱팀을 이끌며 르망에 출전할 수 있는 중계자 역할을 했던 리 아이아코카의(존 번탈) 행보이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인 아이아코카는 1946년 포드에 입사해 커리어를 쌓았다. 머스탱과 링컨 컨티넨탈 마크 3, 에스코트 등 포드의 간판 승용차 개발에 참여했던 아이아코카는 침체에 빠진 포드를 다방면에서 살려 내는 1등 공신이었고 그중 캐롤 셸비를 추천한 1966년 르망의 성과는 대표적으로 꼽힌다. 부회장까지 올라간 아이아코카는 회장이었던 포드 2세와 갈등 끝에 1978년 해고되며 폐업 직전이었던 크라이슬러로 자리를 옮긴다. 1달러 연봉을 제시한 아이아코카는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다양한 시도, 람보르기니와 지프를 인수하면서 크라이슬러를 다시 살려내고 1992년 은퇴한다. 이후 2005년 다임러크라이슬러 그룹의 홍보 대사로 활동하면서 빈 카운터가 아닌 진정한 ‘카가이’가 필요함을 설파하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어록은 ‘더 나은 차가 있다면 그 차를 구입하라’이다.
영화에서 아주 잠깐 등장하는(막판 우승 장면) 브루스 맥라렌은 1966년 르망 전후에도 F1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기며 페라리의 라이벌이 된다. 안타깝게도 브루스 맥라렌은 1970년 경주차 테스트 도중 사망한다. 그의 레이스에 대한 열정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F1의 명문팀인 맥라렌팀이 그의 철학을 계승하고 있다.
포드 앤 페라리는 멧 데이먼과 크리스천 베일 두 배우의 열연뿐 아니라 20세기 자동차 업계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해 가는 카가이들의 불꽃같은 삶은 조명한 포드 앤 페라리는 최근에 개봉한 자동차 관련 영화 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덧붙임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고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가장 서운했던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은 바로 포드 본사가 있는 데어본에서 포드 GT의 개발을 담당했던 엔지니어들이다. 캐롤 셸비와 켄 마일즈 두 명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지만 그에 비해 비중이 너무나도 적었던 데어본 출신의 엔지니어들은 영화의 흥행을 축하하면서도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