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생활의 시작, 그것은 분노로부터
회사원이 된 이후 나의 매일매일은 그야말로 전쟁 같았다. 오늘 안에 끝내야 하는 많은 일들 사이에는 언제나 급한 일들이 치고 들어왔고 급한 일을 끝내 놓으면 중요한 일들이 생겨났다. 몰아치는 업무 폭풍 속에 야근은 너무나도 당연했던 시절. 밤늦게 책상 앞에 앉아있자면 회사의 의미,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내 존재의 의미에 대한 의문이 하나 둘 떠오르곤 했다.
나는 왜 이 시간까지 일을 해야 하지?
난 왜 회사를 다녀야 하지?
일은 도대체 왜 해야 하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열심히 준비한 일이 뒤집어지고 엎어지는 건 다반사 늘 어딘가에서는 사고가 터졌다. 전화벨이 울리기만 해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언제나 새롭게 갱신되는 빡침 속에 항상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서 있었다. 늘 스트레스에 눌려지내며 이런 거지 같은 직업을 선택한 몇 년 전의 나를 저주하고는 했다.
늘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이번 달 내야 하는 월세, 만기가 남은 적금, 갚아야 할 카드 값이 발목을 잡았다. 집에서 가만히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니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매일 저녁 아침에 깨질 않길 바라며 잠들었다. 출근길에는 내가 타고 있는 버스가 뒤집어지거나 어딘가를 들이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멀쩡하게 정류장에 내리고 나면 회사 건물에 불이 나지 않을까 기대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는 갑자기 쓰러져버렸으면, 병이 나서 입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서 꾸역꾸역 회사를 다녔다.
별것도 아닌 일에 분노가 솟아오르고 시도 때도 없이 울컥울컥 짜증이 터져나오며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 회사에서 난동도 부렸는데 변하는 건 없었다.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다 보니 야금야금 10kg 넘게 살이 쪘다.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면서 안구건조증은 심해졌고, 구부정해진 어깨는 늘 딱딱하게 뭉쳐있었다. 턱관절이 나빠지며 심한 편두통에 시달렸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피부가 뒤집어졌다. 쉬는 날이면 두어 군데의 병원 투어가 당연했고 돈 벌어서 병원비로 다 쓴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살고 있으니 나도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이 나서 입원이라도 하고 싶다'라는 말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건강검진에서 커다란 혹을 발견했고 개복 수술을 하기로 한 것. 아직 서른 살도 안됐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이것이야 말로 산재가 아닌가! 몸이 망가졌다는 것이 화가 나기도 했지만 사실 난 이 핑계로 회사를 쉴 수 있다는 것이 더 기뻤다. 공식적으로 한 달의 병가를 받자 남들은 내 건강을 걱정해주었는데 나는 좀 놀다 오겠다며 낄낄댔다.
하지만, 꼼짝할 수 없었던 한 달의 시간 동안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회사에 가지 않으니 할 일이 없었다. 회사가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놓고 내 생활엔 회사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니. 일이 끔찍하다고 하면서 내 평일의 시간은 모두 일을 위해서 쏟아붓고, 주말에는 밀린 잠을 몰아 자면서 출근을 하기 위해 에너지 충전하는 삶이라니. 이게 무슨 거지 같은 인생이야? 갑자기 수술을 하게 된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싫어하는 일만 하다가 죽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때려치우고 말지'라는 말도 한 만 번쯤 했으니 진짜 이젠 그만둬도 될 것 같았다. 싫다 싫다 하는 일을 계속하는 나 자신이 징글징글해서라도 그만둬도 될 것 같았다. 꾸역꾸역 버틴 덕분에 이젠 경력도 생겼고, 조만간 적금이 만기 되면 당분간은 굶어 죽진 않을 것 같으니 정말 그만둬도 될 것 같았다.
딱 1년만 놀다 오겠습니다
남들 보면 회사에 멋있게 사표를 던지고 자신의 꿈을 좇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던데, 난 딱히 꿈도 없고 하고 싶은 것이 없었으므로 그냥 놀기로 했다. 나의 꿈은 그저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었으니까. 회사를 그만두는 만큼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었다. 왜냐하면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