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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오월 Jan 17. 2016

나의 방학은 바르셀로나에서

인생은 타이밍, 그렇게 결정된 바르셀로나 행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꿈인 사람이 회사를 그만두면 무얼 하면 좋을까?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계획은 있어야 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여행이었다. 다들 회사 그만두면 세계일주 가던데!!  나도 노는 김에 한번 가볼까 싶었지만 내가 모아둔 돈은 정말  터무니없었다. 아침마다 살겠다고  약처럼 마셨던 커피, 당 떨어질  때마다 먹었던 초콜릿,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봤던 공연의 흔적이 훑고 지나간 내 통장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그래도 외국으로는 나가고 싶었다. 한국에 있으면 그냥 백수가 되겠지만 외국에 나가면 '새로운 경험을 하러 가는 것'이 되니 죄책감 없이 더 잘 놀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치열하게 살아야만 해서 날 피곤하게 하는 이놈의 나라가 징글징글했으니 어쨌든 멀리 떠나야겠다고, 그리고 이왕이면 오래 나가 있고 싶었다. 


외국으로 나갈 방법은 여행 혹은 어학연수 혹은 워킹홀리데이의 세 가지 정도의 옵션이 있을 것 같았다. 제일 먼저 생각난 게 여행이긴 하지만 사실 여행에는 큰 욕심이 없었다. 게으르고, 호기심도 없는 나는 여행에 적합한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떠나기 전이 제일 즐겁고, 여행지에서의 놀라움과 즐거움은 한 시간이면 사라진다. 낯선 장소에서 나의 안전을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알찬 하루를 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피곤했다. 게다가 내 통장 사정은 먼 나라로 오래 떠나고 싶다는 내 희망사항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학연수는 고민할 여지도 없었다. 돈이 없었다. 영국이나 미국은 당연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필리핀 어학연수도 찾아봤지만 역시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몇 년 동안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모은 돈인데, 그 돈으로는 몇 달의 시간을 사기도 어려웠다. 공부를 하는 것도 왠지 귀찮아져서  이 옵션도 금방 포기하기로 했다. 


역시나 워킹 홀리데이가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자국 노동자를 때려치우고 외국인 노동자의 길을 선택하는 것도, 적지 않은 나이에 떠나는 것도 조금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지금 아니면 안 될 기회이기도 했다. 돈 벌기에는 농장이 좋을까? 스타벅스에서 일을 좀 배워두고 떠날까? 이미 다녀온 친구들도 많았기 때문에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며 조금씩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즈음 생각지 못한 옵션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선배 찬스였다. 선배가 바르셀로나에서 같이 일할 사람을 찾는다고 공고를 올린 것. 바르셀로나를 너무 좋아해서 틈 날 때마다 바르셀로나로 떠나더니 결국은 바르셀로나에서 살면서 남들에게 바르셀로나를 알리는 일을 하는 멋진 삶을 살고 있는 선배였다. 가끔 연락을  주고받을  때마다 '나를 채용해달라, 나도 외국에서 살고  싶다'라고 농담을 빙자한 투정을 하고는 했었는데, 정말 그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한 순간 타이밍을 맞게 나타난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유럽의 따뜻한 나라에서 일을 하면서 장기간 지낼 수 있다니! 기회를 꼭 잡고 싶어서 바로 다음날 스페인어 학원도 바로 등록했다.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 스페인에 정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절절한 마음을 담아 선배에게 지원서도 보냈다. 그리고 선배의 응답을 받아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일을 하기로 했다. 


응? 바르셀로나라니!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잡은 기회이지만  얼떨떨했다. 내가 그렇게 바르셀로나에 살 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회사 생활을 잠시 멈추고 아무 생각 없이 딱 1년만 놀겠다던 계획이 갑자기 아주 멋지게 되어 가는  듯했다. 그래서 아주 기쁜 마음으로 회사에 퇴사 선언을 했다. '저 바르셀로나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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