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오월 Apr 03. 2023

혜원, 10년을 일하고 알게 된 것들

혜원은 광고대행사에서 일을 시작해서 지금은 뷰티 회사에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항상 멋지고 세련된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혜원의 일입니다. 뷰티 화보도 찍고, 영상 광고도 만들고요. 뭔가 어려운 복잡한 문서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자주 사용하고 있는 브랜드의 마케팅을 제 친구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새삼 대단합니다.  


대학 시절 강의실에 혜원과 나란히 앉아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납니다. 신기하게도 둘 다 당시 생각했던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어요. 하지만 십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14년 차 마케터, 혜원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마케팅 일을 하고 있는, 혜원입니다.



우린 광고를 하고 싶다는 관심사로 친해졌던 것 같아.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냥 광고가 너무 좋았어. TV를 볼 때 프로그램보다 광고가 더 재밌었어. 그리고 우리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한 마디의 강력한 카피로 인식의 전환을 시킬 수 있는 그런 게 있었잖아. 그게 너무 멋있었어. 우리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광고는 약간 예술 반 상업 반의 영역이었던 것 같아. 선배들이 그러더라고 '우리가 대학생 때 광고회사를 봤던 이미지가 요즘 애들이 스타트업 보는 이미지 같다'라고. 뭔가 되게 혁신적이고 자유분방하고 선도적이고 그런 느낌.



그렇게 원했던 광고일로 결국 커리어를 시작했잖아.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 생각나?   

당시에 내가 어떤 감정으로 회사를 다녔는지 아직도 생생해. 그때 나 되게 파릇파릇했는데 또 너무 우울했어. 바로 정직원이 된 게 아니었거든 그때 당시에 팀장님이 나 잘하니까 뽑아야 한다고 엄청 밀어주셔가지고 인턴에서 정직원 전환이 됐는데, 3개월 동안은 엄청 많이 쫄렸지. (고용이 불안한) 그런 상황에 놓여있다는 게 되게 힘들었어.


그땐 맨날 새벽까지 일 했었어. 정말 다행히도 우리 팀 정말 좋으신 분들 사이에 내가 있었고, 또 그분들이 일을 잘하셨던 분들이라서 일을 잘 배웠어. 선배들이랑 야밤에 뭐 시켜 먹고 일하는 게 재밌어서 견뎠는데 어느 날은 힘들다는 감정이 나를 압도하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의미를 못 찾기도 하고. 회사 계단에서 혼자 많이 울었어. 서류 가지고 회사 계단 올라가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일을 해야 될까' 하면서 슬펐던 기억이 많이 나.



맞아, 나도 처음에 취직했을 때 너무 괴롭고 우울했던 기억이 먼저 나. 어떤 일을 하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회사 일이라는 게 너무 충격적이었어. '이렇게 일하는 게 맞나'와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사이에서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어.

기획서를 써야 되는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 스스로도 정리가 하나도 안 되고 하니까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고. 나도 선배들처럼 기획서를 잘 쓰고 싶은데 잘 안되니까 처음에는 재미를 못 느끼기도 했던 것 같아.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그때 나는 대리님들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대리가 너무 되고 싶었어. 꾸역꾸역 견뎌서 대리를 달았더니 사람들이 '혜원아'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대리님'이라고 하는 게 좋더라? 또 그때쯤부터는 내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니까 일이 재미있어졌어.



그리고 일 하다가 4년째인가, 영국으로 가서 플라워스쿨 다녔잖아. 갑자기 왜 갔어?

대학교 때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안 갔던 게 회사생활 하면서 계속 아쉬움으로 남았었어. 그래서 휴직을 하고 플라워스쿨 1년짜리 하고 왔지. 그때 당시에는 나도 조금 잘못 생각했던 거 같아. 원래 대학원에 가고 싶었는데, 학위를 따면 뭔가 내 인생이 바뀔 줄 알았던 거야. 잘못된 생각이지. (웃음) 그때 아빠가 학력 인플레 얘기하면서 그냥 영어공부나 하라고 했어. 근데 난 아쉬워서 관심 있던 플라워스쿨에 갔던거야. 사실 좀 아깝다는 생각은 해. 나중에 내가 꽃집을 하지 않는 이상 플라워스쿨을 다녔던 게 가치가 있을까 싶고. 갔다 오면 나는 진짜 뭔가 내 인생이 드라마처럼 변할 줄 알았어. 근데 똑같았고 그냥 갔다 와서 복직한 거야.


휴직하고 영국 런던 플라워스쿨로 훌쩍 날아간 시절의 혜원.


극적으로 일만 열심히 했던 거 아닐까? 너나 나나 대행사 다니면서 진짜 빡세게 일했던 것 같아.  

나는 자의로 열심히 산건 아니지만, 열심히 해야만 하는 그런 곳에 계속 놓여있던 것 같아. 상사를 그렇게 만나든 회사가 빡세든 진짜 하드 코어로 일을 배우고 진짜 빡세게 했어. 지금 회사에 이직해서도 온갖 챌린지와 과제 다 받아가면서 진짜 울면서 일했고. 지금 생각하면 못할 거 같은데 그때는 그거를 했다?  나는 어디 가 가지고 정말 대충 살았다는 얘기는 못할 정도로 진짜 열심히 했어.



빡센 광고회사 다음에는 빡센 뷰티회사로 옮겨서 8년 동안 같은 브랜드를 담당하면서 일을 했잖아.

응, 한 브랜드 안에서 온갖 콘텐츠도 만들고 미디어 믹스도 짜고 이것저것 다 해봤어. 사실 내 계획은 대리 정도 달고 나와서 회사 그만두는 거였다? (웃음) 나는 진짜 내가 회사를 한 4~5년 정도만 다닐 줄 알았거든. 원래 계획은 20대 때 결혼을 하는 거였어. 그래서 사회초년생 때는 늦게 퇴근하고 하는 게 너무 힘들고 너무 괴로웠어. 왜냐면 내 꿈은 일하는 게 아니니까! 집에서 쉬고 싶은데 왜 계속 이렇게까지 일해야 되나 언제까지 일해야 하나 그게 너무너무 괴로웠던 거지. 특히 6년 차쯤부터 10년 차까지 한 4년 정도 힘들었어. 그때 나를 제일 힘들게 했던 건 나야. '도대체 언제까지 일해야 해!!'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



계획에 없이 생각보다 일을 오래 했는데, 일을 시작할 즈음의 자신에게 뭘 미리 알려주면 좋을까?  

'너는 절대로 그만두지 않는다'라는 것. '인생이 너의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라.'라는 것도. 플랜 따위 하지 말라고 할래. 하지만 열심히는 해야지. 대신 다칠 만큼은 하지 말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몸이 다치지 않는 수준에서 열심히 하라고 할래.


아, 그리고 나는 사회 초년생에게 그걸 좀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 '뭐든 꾸준히 하면 잘하게 된다!' 십년을 해서 뭐라도 된다는 걸 알았다면 견딜만한 힘이 생길 것 같아. 난 최근에 '10년 정도는 한 분야에 있어야 전문가가 된다'는 말이 진짜 맞다 싶더라고. 근데 물론 전제 조건은 그 10년 동안 치열하게 해야 하는 거지만.



맞아! 직장인으로서 매년 레벨업 되고는 있지만, 10년 즈음에는 계단을 올라온 것처럼 조금 다른 차원의 깨달음이 있는 것 같기도 해.

난 10년이 지나고 안정감이 생긴 거 같거든. 예를 들어서 우리가 하는 마케팅 일 안에서도 여러 분야가 있잖아. 누구는 데이터 분석을 잘하고, 어떤 사람은 크리에이티브를 잘한다는. 각자의 영역이 조금씩 다른데 난 11년 차 정도에 나의 장점이자 무기를 깨달았어.


나는 無의 상태에서 有를 만들어내는 걸 잘하는구나, 큰 방향성을 제시하고 비전을 제시하고, 프레임을 짜서 뭔가를 변화시키고, 문제에서 인사이트를 얻어서 크리에이티브를 어떻게 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는 일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구나 하는 것. 그게 나의 장점이고 내가 어디 가서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걸 깨달은 게 11년 차야. 그전까지는 그게 잘 안 보이고 잘 안 잡히니까 내가 못하는 부분만 계속 부각돼서 보였었거든.



근데 그건 딱히 못하는 게 없고 뭐든 보통 이상 하는 사람의 고민 같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잘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조금만 더 하면 더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자꾸 자기를 몰아세우게 되잖아.

나는 다 잘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늘 불안하고 괴로웠던 거 같아. 웬만큼 다 하긴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 스페셜한 사람인가 싶고. 내가 갖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서 자괴감도 느끼고. 예를 들면, 저기 음악 하는 애들이 있고 걔네는 음악만 할 수 있어. 그래서 걔들은 그걸 죽어라 해. 근데 나는 회사 생활도 하면서 죽어라 하는 음악만 하는 애들만큼 음악을 잘하지 못하는 걸 속상해하는 그런 건데...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잖아. 모든 걸 잘할 수 없지만 나만 잘할 수 있는 영역은 분명히 있고.  난 그걸 깨닫는 게 좀 오래 걸리긴 했는데. 결국엔 다른 사람들도 나의 무기를 알게 되고, 나 스스로도 알 수 있게 되니까 그때 조급해하지 않았다면 좋았겠다 싶지. 그걸 알았다면 내가 덜 아프고 나를 덜 갈아 넣어서 덜 힘들었을 거 같고. 물론 그때 다 잘하고 싶은 욕심으로 했던 것들이 지금 나를 만들어줬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너무 열심히 해서 몸과 마음을 다치긴 했지만, 어쨌든 결국 열심히 해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네.  

지금은 열정을 강요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 결국은 자기 복은 자기가 챙기고 자기 역량도 스스로 키워야 하는 것 같거든. 본인이 욕심이 있고 열정적으로 하는 애들은 내가 하지 말래도 해. 그리고 그런 애들은 나중에 결국 무엇이든 얻어갈 거고. 물론 얼떨결에 잘 되는 애들도 있겠지만 결국엔 다 자기가 한만큼 가져가는 거 같아.


어디서든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거기서 나오는 거 아닐까. 나는 부딪혀 봤으니까! 열심히 해봤으니까! 난 이제 무슨 과제가 주어져도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 같아.


맞아, 어떻게든 해낸 경험이 나한테 자신감을 주지.  

얼마 전에 임원 보고 준비하면서 진짜 너무 힘들었거든. 심지어 나에게 주어진 과제 해석을 못하겠는 거야.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혼란스러운 부분이 많았어. 보고 30분 전까지 자료를 계속 고치고 또 고치고, 일주일 동안은 2시간씩 자면서 맨날 수정해서 보고하고 피드백받고 또 고치고 이걸 계속했단 말이야. 솔직히 너무 자괴감 들고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야. 혼자 새벽 4시까지 노트북을 붙잡고 있는데 두줄을 못 쓰겠고. 이렇게까지 괴로워하면서 못 쓴 적이 없는데. 회사 친한 동생에게 '미칠 것 같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더니 그 동생이 '근데 알잖아요 결국 해낼 거.'라고 하더라고. 맞아. 나는 도망가지 않고 결국 해낼 사람인거지. 결국 했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나는 습관적으로 나랑 마음이 잘 맞는 동료들한테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중에 사업하면 같이 일하자'라고 맨날 다 던져놓거든. 그래서 언젠가 그 사람들이랑 무슨 일이든 저질러 보고 싶어. 무슨 일이 될 진 아직 모르겠지만.  



우리의 대화에는 '열심히' '빡센' 같은 단어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땐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다가도, 그렇게까지 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는 공감했습니다. 우리의 지난 10년은 울며불며하더라도 결국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혜원이 무슨 일을 벌리든 꼭 그 일을 함께 하고 싶어요. 혜원은 뭐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끝>




혜원의 브런치

https://brunch.co.kr/@brandik/3

매거진의 이전글 다은,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