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밀가루, 커피 끊기 2일 차
40대 초반까지만 해도 음식에 꽤 신경을 쓴 편이다. 과자나 아이스크림은 생리 시작 전에나 먹었지 평소에는 가까이하지 않았다. 30대 중반부터는 떡볶이를 2년에 한 번 먹을 정도였으니 몸 관리에 진심이었던 것 같다.
운 좋게도 타고난 '근수저'여서 지금까지 조금만 운동하면 체지방이 쉽게 빠졌다. 하지만 국밥이나 국수를 좋아해서 정신줄 놓고 먹으면 또 금방 살이 차올랐다.
40대 중반을 넘기는 시점부터 배가 빵빵하게 부른 게 싫어졌다. 적당히 먹고 멈추면 되는데 꼭 끝장을 봐야 했다. 날씬한 사람들을 보면 딱 자기 양이 차면 젓가락을 내려놓던데 그게 잘 안 됐다.
게다가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김치찌개나 국밥 같은 칼칼한 음식을 먹으면 단짠단짠의 원리로 달달한 무언가가 먹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점점 좋아하던 한식을 멀리하게 되었다.
둘 다 먹으면 부담스러우니까 내가 선택한 것은 우습게도 과자류를 식사 대용으로 먹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을 한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주도권이 가벼운 과자류로 넘어갔다.
배는 고픈데 한식으로 배 뚜드리면서 먹기는 싫고, 밥과 반찬을 먹고 나면 디저트가 땡기니까 그냥 디저트로 당을 채우게 된 것이다.
그렇게 8개월 만에 무려 10킬로가 증가했다.
내 인생에서 처음 보는 몸무게가 되었다. 아침에 빵과 커피, 점심에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국수류와 디저트, 저녁에는 대충 간식으로 마무리하는 식습관은 빠르게 내 몸을 망가뜨려갔다.
어제 브런치에 적은 나의 '소마', 인공감미료들에 더해 찐 설탕까지 손을 잡고 내 장을 두드려 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염라대왕처럼 화가 난 장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뇌 보다 장에게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
흰 죽과 감자 달걀국, 삶은 달걀흰자와 찐 고구마.
뜻밖의 다이어트 식이 되었다. 그래도 번아웃이 온 장에게 휴가를 주기 위해서, 그리고 부글거리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밀가루, 설탕, 커피를 끊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내 뇌가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저항을 할 줄 몰랐다. 그동안 들어오던 방대한 양의 설탕과 카페인과 빵의 식감이 뚝 끊겼으니 뇌 입장에서는 응당 들어와야 할 에너지가 안 들어온다고 느끼는 것이다.
어제는 첫날이어서 그럭저럭 뇌가 봐준 모양인데 둘째 날인 오늘은 뇌가 파업을 해 버렸다. 계속 졸렸다. 마치 째째 파리한테라도 물린 것처럼 잠이 쏟아졌다.
안 되겠다 싶어서 유튜브를 켜고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를 찾아보았다. 그러면서 내가 그동안 뇌에 엄청나게 몹쓸 짓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대, 회사에 다닐 때 옆자리에 배가 만삭에 가까운 30대의 남자 직원이 앉아 있었다. 그의 서랍에는 빵빵한 그의 배만큼 다양한 과자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가 과자를 입에 넣기 전에 항상 한 말이 있었다.
어우, 졸려. 왜 이렇게 졸리지?
그 말은 이제부터 과자를 흡입하겠다는 신호탄이었다. 나를 비롯해서 주변의 많은 직원들이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가 너무나 이해가 된다. 내가 그때의 그로 완벽하게 빙의했기 때문이다. 달콤한 자극, 카페인이 들어오지 않으면 뇌는 지루해지고 당장 재미있는 걸 내놓으라고 스트레스 상황을 만든다.
설탕에, 카페인에 중독된 인간들은 마치 영화 연가시에서 물을 찾아 냇가로 강으로 뛰어든 사람들처럼 설탕과 카페인을 찾는 것이었다.
2주.
전문가들은 일단 2주만 설탕과 카페인을 끊어보라고 한다. 솔직히 아직은 과자도 커피도 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신기하게 단 이틀 이것들을 끊으면서 장이 잠잠해졌기 때문이다. 장이 폭동을 일으킨 것은 내 몸이 보내는 최후의 통첩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지금은 호기심이 더 크다. 설탕, 카페인, 밀가루를 2주 동안 완전히 끊으면 내가 어떻게 될지.
좋은 후기를 2주 뒤에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