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누구의 것인가?
번아웃이 온 장에게 안온한 휴가를 주기 위해 장 휴식 식단에 들어간 지 3일이 지났다. 3일 동안 먹은 음식은 다음과 같다.
흰 죽, 계란죽, 감자 달걀국, 찐 고구마, 삶은 달걀(흰자만), 따뜻하게 데운 사과.
보기만 해도 이유식이 떠오른다. 3일 동안 가장 큰 변화는 속이 편해졌다는 것이고 다른 변화는 가시가 온 몸에 돋혔다는 것이다.
누군가 설탕을 끊고 없어진 것 세 가지를 꼽았다.
1. 여드름이 없어졌다, 2. 붓기가 없어졌다, 3. 싸가지가 없어졌다.
이틀 차 저녁에는 별것 아닌 일인데 아이에게 신경질적으로 대답을 했다. 아이가 나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엄마, 얼른 고구마 먹어!
마치 적이라도 만난 복어처럼 온몸의 가시가 뾰족하게 돋아났다. 적은 짜증뿐만이 아니었다.
머리가 강강강 울리고 지끈거렸다. 그리고 졸음이 쏟아졌다. 낮잠이라도 자고 일어나면 한기가 돌면서 따뜻한 무언가가 먹고 싶어졌다. 이 느낌...... 언젠가 겪어본 적이 있다.
그렇다!
숙취다!
신기하게 설탕, 커피, 밀가루를 끊었는데 왜 숙취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걸까?
이것은 전해질 불균형이라는 현상 때문이다.
아침에 먹던 기름지고 달콤한 프렌치토스트, 오후 간식으로 먹던 페스츄리 빵. 설탕과 기름이 범벅인 밀가루와 커피는 말 그대로 환장의 조합이었다. 평소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설탕과 밀가루가 범벅이 된 음식들을 커피와 함께 즐겨댔다.
이 환장의 메뉴로 하루 종일 차고 넘치게 공급되던 당분과 지방이 하루아침에 뚝 끊겨버린 몸은 전해질 붕괴로 인해 숙취와 유사한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장이 부대껴서 며칠간 쉬려고 생각을 했을 뿐인데 몸에서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차분히 앉아서 설탕과 관련된 영상들을 몇 편 찾아보았다.
내가 탄수화물 중독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설탕 중독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어쩌면 외면하고 있었을지도. 한 의사의 유튜브 채널에 설탕중독 자가질문이 있어서 체크해 봤다. 빼도 박도 못하게 설탕 중독이 나왔다.
내가 내 몸을 이렇게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과연 나는 이 몸뚱이의 주인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까지 던지게 되었다.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이 떠올랐다. 몸은 단지 세상과 관계 맺기 위한 도구일 뿐, 진짜 나는 이 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몸은 무엇인가?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나의 몸은 나의 영혼이 잠시 이 세상에 머물렀다 가기 위해 빌린 '집'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누군가의 집을 전세든 에어비엔비든 잠시 빌려 쓸 때에는 망가지지 않게, 깨끗하게 잘 사용하고 돌려주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나는 내 몸이 내 것이라고 함부로 마구 잡이로 사용해 왔던 것이다. 진짜 사랑한다면 무엇을 해줄까 생각하기보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내 몸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는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대답은 '아니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