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사람들은 특정한 단어로 자신을 규정하고 싶어 한다. MBTI나 각종 심리진단명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8개의 알파벳 16개의 조합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정의하고 강박, 우울, 공황, 소시오/사이코 패스 같은 이름으로 자신을 진단한다.
어떤 사람들은 진단명이 자기의 정체성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아주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진단명이 자기의 정체성이 되어 버리면 자신도 모르게 그 진단명에 걸맞은 행동을 더 강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리상담 전문가들은 진단을 하지 않기도 한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자기의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스스로를 '꼰대'라고 부르는 사람을 경계한다.
내가 꼰대잖아.
이 말은 자기의 행동들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꼰대라는 정체성의 방패 뒤에서 훈계와 간섭을 정당화한다. "내가 꼰대라서 그래."라는 말은 자신의 말에 대한 비판을 피해 갈 명분이 된다.
하지만 나에게도 그런 말이 있다.
내가 원래 먹는 걸 좋아해서.
세상에는 타고나기를 식욕이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어느날 엄마에게 언제부터 내가 잘 먹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질문에 엄마는 '어릴 때부터 잘 먹었다'고 답했다. 그만 먹으라고 말려봤냐고 묻자, "아유~ 그럼~ 말렸지~ 근데 계속 먹더라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이 말을 듣기 전부터 나 스스로 '먹을 걸 좋아하는 사람', '잘 먹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엄마와의 짧은 대화가 나의 먹부림 정체성을 인증해 줬을 뿐이다.
아무래도 여자들이 모이면 으레 '다이어트'에 대한 얘기가 나오게 마련이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원래 먹는 걸 좋아하잖아' 라며 내가 살을 못 빼는, 내지는 살이 찌는 사실을 합리화했다.
세월이 지날수록 소식하는 건 내 이미지와 멀어졌고, 나는 튼튼하고 씩씩하게 잘 먹는 사람으로 빚어졌다. 먹순이 정체성에 반발해서 살을 빼도 '원래 먹을 걸 좋아하는' 항상성에 연신 패배했다.
이번에 몸에 대해 깊이 사유하면서 나의 식탐이 요나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요나 콤플렉스'는 자신의 새로운 변화를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개인의 변화나 성장을 회피하는 경향을 뜻한다. (자아실현의 위계 발달 이론, 매슬로우)
맛집을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야무지게 먹는 나였다. 그런데 갑자기 건강한 음식, 소식, 절식의 모습을 보이면 주변 사람들은 내가 무슨 병에 걸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고정불변의 값이 아니다. 한 번 형성되었다고 절대 따라야만 하는 진리도 아니다. 발달 단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정체성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물론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삶에서 먹는 즐거움은 긍정적이고 행복을 주는 대표적인 요소이다. 안 먹고살겠다는 건 아니다. 내가 그동안 유지해 온 '원래 잘 먹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적당히', '건강하게' 먹는 사람, 내지는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바꿀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다.
원래 그런 사람은 없다.
자기가 어느 방향으로 자신을 만들어가느냐에 달렸다. 이제 '원래 잘 먹는 사람' 이라는 정체성을 탈피하고 건강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해야 할 때가 왔다. 원래 그런 사람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