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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관계 재설정하기

설탕, 밀가루, 카페인 끊기 7일 차

by 진재


우리는 흔히 내 몸은 내가 잘 안다고 말한다. 건강에 대해서 자부하기도 한다. 나 역시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도 내 몸은 언제까지고 건강한 장수 유전자의 덕을 볼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해가 갈수록 느끼고 있다.


지나간 날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몸의 반응은 곳곳에 복선을 깔아 두었었다. 몸이 알려준 정보를 깊게 새겨듣지 않은 나는 비슷한 고통을 반복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나중에서야 그것이 나에게 맞지 않았음을 은연중에 알아차리기도 했다.


자극추구성향이 유난히 강한 나는 매운 음식을 탐닉했던 시절이 있었다. 신길동에 있는 유명한 짬뽕집이나 선릉역에 있는 지독하게 매운 떡볶이, 가장 매운맛의 닭발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일명 선매라고 불리는 매운 떡볶이를 처음 접했던 남편의 소감은 '욕'이었다. 이걸 왜 먹냐고 투덜거리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인상을 쓰며 호기를 부리던 남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나랑 결혼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 매운 떡볶이가 나 역시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속이 쓰렸고 내 몸은 더 이상의 자극은 거부한다고 외쳤지만 나는 몸의 외침을 무시했다.


내 몸이니까 언제까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부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멋대로 집어넣은, 너무너무 재미있지만 조악한 음식들은 점차로 내 몸을 황폐하게 만들어 갔다.


주의와 경고를 받고 앞으로 건강하게 먹겠다고 다짐을 해도 그때뿐이었다. 세상에는 끝도 없이 다양한 맛으로 쾌락을 주는 음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거부할 힘이 없었다. 아니,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7일 동안 아기 이유식을 방불케 하는 재미없고 순한 음식들로 위를 채워왔다. 당근을 잘게 썰어 간 닭가슴살을 넣은 흰쌀 죽에 이름을 붙였다.


'착하게 살자'


단 게 먹고 싶어지면 바나나를 반 잘라서 먹거나 딸기를 무지방 요거트에 넣어 먹었다. 딸기가 이렇게나 과즙이 넘치는 맛있는 것인지 새삼 다르게 보였다.


지금의 내 몸은 2주 전에 먹은 것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기름지고 바삭한 것을 먹는다고 내일 몸의 변화는 없다. 하지만 이런 쾌락추구적인 음식들이 쌓이고 쌓여 2주 뒤의 나의 몸을 만드는 것이다.


설탕, 밀가루, 카페인(과자, 빵, 국수, 커피)을 완전히 끊은 지 1주일이 되었다. 중년의 나이에 이렇게 과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도 되는지 걱정은 했었다. 걱정과 실천은 별개의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물질과도 같았다.


일주일간 설, 밀, 카를 끊으니 배가 부글거리고 장이 팽창되는 것이 뚝 끊겼다. 천국이 따로 없다. 이런 편안함을 느끼니 다시 그 전의 괴로운 상태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아 졌다. 오히려 계속 이렇게 끊는다면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졌다.


유튜브에서 이미 설탕, 밀가루 끊기를 시도해 본 사람들의 영상을 몇 개 찾아보았다. 나에게도 그런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지 직접 느껴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회에 내 몸과의 관계를 재설정하기로 했다. 관계 재설정을 위해서는 건강한 음식이 매력 없는 음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순하디 순한 음식을 먹는 내가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의 전환은 꽤 괜찮은 계약 조건인 것 같다.


지금까지 나와 몸의 관계가 폭군과 종의 관계였다면 이제부터는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상생하는 존중 관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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